선화공주(善化公主)니믄 善化公主主隱
ㄴ.ㅁ 그ㅿㅡ지 얼어 두고, 他密只嫁良置古
맛둥바 ㅇ.ㄹ 薯童房乙
바ㅁ·ㅣ 몰 안고 가다. 夜矣卯乙抱遣去如
이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중 4구체 향가의 대표적 작품인 '서동요'이다. 위의 해석은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배우는 양주동 선생의 해석인데, 이 해석의 가장 큰 문제점은 '卯乙'(묘을)을 두 글자 모두 음을 따온 것으로 보고 '몰래'라는 뜻의 '몰'로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은 앞의 '薯童房乙'(서동방을)에서는 '乙'이 목적격 조사로 사용되었는데, 다음 행에서는 단순히 'ㄹ'음을 표기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몰래'라는 뜻이라면 2행의 '他密只'(타밀지)에 사용된 '密'을 사용하면 되는데 다른 향가에서는 한 번도 안 보이는 '卯乙'이라는 표기를 썼다는 것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마동 서방을 몰래 안고 가다'라는 해석도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문맥 그대로만 본다면 '선화공주가 장미란 선수쯤 되는 힘이 센 여자인가?' '밤에 남자를 안고 어디로 가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김완진 선생은 '卯'를 알을 뜻하는 '卵'(란)의 오기(誤記)로 보고, '薯童房'을 '마동 서방'이 아니라 '마동이의 방'으로 해석하고 '밤에 알을 안고 가다'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앞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주동 선생의 해석보다는 타당한 면이 있다.
이 향가의 배경 설화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익히 잘 아는 설화 그대로다. 백제의 무왕은 어려서 마(薯)를 캐서 생활했으므로 마동이라 불렸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인 선화가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서울로 갔다. 동네 여러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면서 바로 자신이 지은 서동요를 부르게 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인터넷에 찌라시를 유포하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권력 기관의 공식적인 발표보다는 떠도는 이야기들이 위력을 더 크게 발휘하는 법이다. 이 노래가 퍼지자 선화공주와 천한 신분의 남자와의 스캔들은 기정사실이 되고, 결국 선화 공주는 유배를 가게 된다. 그 뒤 마동과 선화공주는 맺어지고, 마동이 일하는 곳에 금이 널려 있었고, 지명법사가 신통력으로 금을 진평왕에게 보내고, 진평왕의 도움으로 마동이 왕이 되고, 선화공주의 청으로 미륵사를 창건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지만 반전은 지금부터다. 먼저 '삼국사기'에 보면 무왕은 법왕의 아들로 큰 고난 없이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재위 기간 내내 신라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결정적으로 진평왕에게는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과 김춘추의 어머니가 되는 천명, 두 공주밖에 없었다. 호적에서 파낸 딸이었기 때문에 다른 역사서에 기록이 되지 않았다는 설이 있기도 했지만 전후 상황을 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2009년 미륵사 석탑 보수를 하면서 발견된 금판에는 무왕의 비인 사택적덕의 딸의 발원으로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즉 무왕의 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전라도 지역의 유력한 호족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동요'에 담긴 내용이 괴담이 아니라, 마동이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괴담인 것이다. 아마 백제가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백제와의 통합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는데, 누가 이야기를 만드느냐에 따라 때로는 괴담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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