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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신국민주의 문화운동의 필요성

지난 9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제주도립교향악단 작곡가 이문석의 창작오페라 '안중근'의 쇼케이스 공연이 있었다. 일본인 판사가 사형을 선고한 후 안중근 의사에게 "더 할 말이 없는지?"라고 물었다. 안 의사는 큰 목소리로 "사형 이상의 더 큰 형벌은 없는가?"라며 당당히 반문하였고, 이 장면에서 필자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경험하였다. 분명 음악이나 극적인 처리의 탁월함과 상관없이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눈시울이 따뜻해질 만한 찡한 감동이다.

이렇듯 국민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적 객관성과는 무관할 수 있는 특수한 공감의 영역을 지닌 음악을 음악사에서는 '민족주의 음악' '국민주의 음악' 또는 '국민악파'라 부른다. 이 음악 양식은 1850년 이후 약 50년간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 꽃핀 후기낭만파의 한 흐름이다. 민족의식을 가지고 민요, 춤곡, 역사적인 소재 등 자기 민족의 고유한 특색을 음악에 담던 음악 사조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가적 기념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체코슬로바키아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의 6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국민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유명한 '몰다우'를 비롯하여 '보헤미아의 초원과 숲', 프라하의 요새 이름을 딴 '비셰흐라트' 등 자국의 특징을 담은 정서가 표현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1874년 스메타나가 청각을 완전히 잃게 된 시점부터 5년여에 걸쳐 만들어진 이 작품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더불어 작곡가가 청각을 잃은 후에 쓴 작품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청각을 잃은 두 작곡가는 죽음을 준비하는 긴 무음의 터널 속에서 각기 '세계 평화'와 '조국의 영광'을 노래하였다. 일차적으로는 작곡가 개인이 생애 최후의 사명으로 인식한 일을 하였다는 위대함이 경이롭고, 다음으로는 국가의 담을 넘어 세계인이 공유하며 사랑하는 작품으로서 국가 이미지 부각에 성공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민족음악 양식의 흔적은 13세기 후반 라틴어 일색의 교회음악에서 탈피하여 프랑스어 가사의 성가를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프랑스말(Mot)로 된'이란 뜻의 '모테트'(Motet)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그 후 이어진 신예술시대(1300~1450), 르네상스시대(1450~1600), 바로크시대(1600~1750), 조성음악시대(1750~1900) 그리고 현대음악시대(1900~2050)는 각기 대략 150년의 주기를 가진다. 그중 초기 50년은 신조류의 형성기, 다음 50년은 발전 및 번성기, 그리고 마지막 50년은 쇠퇴기로서, 대체로 민족양식이나 국민주의양식이 만나면서 다음 시대 양식으로 이행해 온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국민주의민족양식의 시대이다. 따라서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음악을 위시하여 한국 문화의 전반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아닌 우리의 국가 이미지가 부각되는 세계적인 작품이 위치해야 할 당위성이 절실하다.

이철우/작곡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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