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산불! 조심이 아니라 예방이다

온 세상이 바짝 말랐다. 동네 어귀에 가득하던 영산홍 꽃망울도 피지 못한 채 이파리마저 몽땅 메마르고, 산속에 낙엽은 불쏘시개와 같다. 이렇다 보니 당국에선 산불조심 기간을 연장 운영하고 있다. 때를 맞춰 매일신문에서 '바짝 마른 산야에 때아닌 6월 산불 비상'이라는 제하의 보도가 있었다. 경북에서는 극심한 가뭄에 최근 한 달 새 17건의 산불로 6월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산림청 통계에서도 6월 14일 현재 48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원인은 주택화재에서 비화된 13건과 기타 108건 이외 368건은 모두 사람의 탓이다. 입산자 실화, 논'밭두렁 소각, 쓰레기 소각, 담뱃불 실화, 성묘객 실화, 어린이 불장난 등이다.

산림보호법 제34조는 산불 예방을 위한 산에서의 행위 제한 규정이다. 누구든지 산림 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산림인접지역에서 불을 피우거나 불을 가지고 들어가는 행위,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30조와 제31조에서는 산불조심 기간 동안 산불방지대책본부를 설치'운영하는 규정과 더불어 같은 법 제31조는 산불조심 기간의 설정 등에 관한 규정을 하고 있다.

이 법 조항을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 행위를 제한하고 있는데 조심도 모자라 기간까지 설정하고 있다. 산에서는 불씨 허용이 아니라 제한이고, 산은 통제구역이다. 조심은 행위 허용에 따른 주의 의무에 해당하는 용어다. 앞뒤가 맞지 않다. 이렇듯 산불은 인위적인 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아직도 그 옛날부터 관행적으로 써오는 법률적'행정적 용어를 다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사전적 풀이로 '조심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신경을 씀'이고, '예방은 질병이나 재해 따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여 막음'이다. 그렇다면 위 법 조항에서 행위를 제한하고 있음에도 왜 조심해야 하고, 산불+조심은 대체 언제부터 사용해 여태껏 써 왔을까.

문경새재에는 '산불됴심' 한글 고비(古碑)가 있다. 영남의 관문이자 선조들이 왕래한 한양 길목에서 부싯돌로 만든 불씨를 그 어떤 용도로든 이용했을 것이다. 불씨를 다루던 시대여서 산에서는 산불이 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으로 '산불' 뒤에 '됴심'이란 글귀를 붙여 썼을 것이다.

조상들은 산에서 불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질그릇과 숯가마는 물론 산에서는 불을 놓아 경작하는 화전도 있었다. 농약이 없던 시대라 산중 다랑논의 병충해 방제는 꼭 두렁을 태웠다. 또한 입산이 자유로운 시대는 땔감도 산에서 채취하는 등 모닥불과 흡연도 자연스러운 농경시대의 일상이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입산도 통제하고 모든 불씨는 아예 취급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심이란 글귀에서 조심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인위적인 산불을 막는 것은 조심일까?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무엇을 조심하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 미리 막는 것이 예방이다. '산불+예방'이 걸맞다. 한때 정부에 생활공감정책으로 제안했다. 점차 고쳐 쓰겠다는 답변도 받았다.

그런데 몇 차례의 법 개정을 거친 산불관련법령상 '산불조심기간'이라는 문구는 여태껏 그대로이고, 이렇다 보니 행정 홍보 깃발의 문구도 '산불조심'일 수밖에 없다.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 교수는 "한글은 세계 그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계"라 했다.

조상께 물려받은 위대한 한글, 적절하게 쓰는 것 또한 세종대왕에 대한 예의이자 창조적 산림경영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권영시/한국 미래숲 연구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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