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우리나라 병원 문화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쇼핑'은 신종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퍼뜨리는 메신저가 됐고, 응급실은 병을 악화시키고 확대하는 진원지 역할을 했다.
가족들이 환자를 간호하고, 병문안을 예의라고 생각하는 한국 특유의 간병문화도 메르스 확산을 부채질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는 방역대책과 허술한 감염병 대응 체계는 헛발질을 거듭했다. 메르스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 병원 문화의 문제점과 부실한 감염병 방역 체계를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전염력이 약하다던 메르스가 전국으로 퍼진 데는 우리나라 특유의 병원 구조와 의료서비스 이용 관행이 한몫했다. 동네의원을 믿지 못하고 하루 만에 2, 3곳의 병원을 전전하는 것이 가능한 '닥터쇼핑'과 감염병에 취약한 과밀한 응급실이 '슈퍼전파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됐다.
◆쇼핑하듯 병원 옮기는 후진국형 관행
메르스 주요 전파자들은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 여러 병원을 옮겨다니며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동네의원을 전전하거나 증상에 차도가 없으면 다른 상급병원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대구경북 첫 확진 환자인 고교 교사 Y씨는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자 확진 판정을 받기 전 경주와 포항의 동네의원 4곳을 잇따라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일에는 근육통 등을 호소하며 경주 이운우내과를, 2일에는 피부질환으로 포항의 서울의원을 방문했다. 3'4일에도 경주 서울내과'이피부과의원을 찾았다.
국내 첫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1번 환자 역시 1주일 동안 병원 4곳을 옮겨다녔다. 이 과정에서 동네의원 2곳과 평택성모병원 등에서 29명이 메르스에 감염됐다.
80명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린 14번 환자는 병원 3곳을 전전했고 23명에게 전파한 16번 환자도 평택성모병원'대전 건양대병원'대청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메르스 환자를 양산했다.
닥터쇼핑이 성행하는 데는 건강보험에 따른 낮은 의료비 부담이 이유로 꼽힌다. 진료비 부담이 적다 보니 여러 병원에 다녀도 주머니 부담이 별로 없어 손쉽게 다양한 동네의원을 찾을 수 있다.
환자와 의사 간 신뢰 관계가 부족하고,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구시의사회 관계자는 "동네의원에서 수술이나 검진을 권유하면 잘 믿지 않고, 무조건 큰 병원에 가야 치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면서 "중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상급병원으로 갈 때 필요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기 쉬운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응급실 과밀화 해소 시급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대구의 대학병원 응급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북새통을 이뤘다. 응급실 내에는 환자와 의료진만 머물고,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게 돼 있지만 지켜지는 곳은 드물다. 중증 환자도 있지만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이 넘쳐나고, 좁은 공간에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이 뒤섞여 응급치료를 받으며 감염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응급실은 늘 병상이 부족하고 과밀화돼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서울대병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의 과밀화지수는 154%에 이른다. 이는 응급병상 수에 비해 환자가 넘친다는 의미다. 응급실마다 간이침대나 의자, 바닥 등에 환자들이 대기하는 이유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감염된 메르스 환자 대다수가 응급실에서 근무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였다.
응급실이 환자들의 입원 대기 공간으로 활용되는 점도 문제다. 대구 대형병원 경우 중증응급환자라도 대기시간이 평균 11시간을 넘는다. 주말에 응급실을 찾았거나 입원비 부담이 적은 다인실을 고집할 경우 3, 4일씩 응급실에 머물기도 한다. 대구의 확진 환자인 K(52) 씨도 어머니와 함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머물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응급실 시설도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대구에는 감염병 환자를 위한 전용 격리 진료실이 전무하다. 관련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환기나 통풍, 습도, 온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격리 시설이 있어야 호흡기 환자들의 처치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섞인 침방울이 실내에 살포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류현욱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까지 대학병원 응급실로 밀려오면서 과밀화 현상이 심각하다"면서 "중증 내과 환자들이나 장기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2차 병원을 확대하고,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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