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KBS 예능, 왜 짝퉁에 의존하나

수신료의 가치, 모방으로 전한다?

KBS
'인간의 조건' 시즌2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사가 타사 히트작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경쟁사를 견제하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사업자'의 마인드에서 기인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단, 창의성을 내세우는 프로그램 제작자가 타 콘텐츠를 베끼다시피 차용하는 건 비양심적인 행위다. 경계가 모호하지만 방송의 경우 특정 기관이 아닌 시청자들에게 '표절' 또는 '모방을 기반으로 한 창작'의 범위를 판단하도록 맡겨두는 게 관행이기도 하다. 그만큼 프로그램 제작진의 양심이, 또 모방하되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실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안이다. 최근에는 비지상파에서 트렌디하고 자유분방한 콘텐츠를 내놓고 방송계를 뒤흔드는 일이 빈번하고 지상파가 이를 모방하는 예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KBS 예능국은 비지상파와 지상파를 가리지 않고 타사의 성공작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경우가 잦다.

◆KBS, '모방 공화국' 오명

실제로 KBS 예능국이 내놓은, 상당수의 프로그램이 사실상 모방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모방은 하되 장점을 부각시켜 '형보다 나은 아우'를 탄생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2013년 말 첫 방송돼 지금까지 주말 저녁 KBS의 시청률을 책임지고 있는 인기 콘텐츠다. 하지만 출발점을 따지고 보면 육아예능 붐의 불씨를 제공했던 MBC '일밤-아빠! 어디가?'의 인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출발 당시부터 꾸준히 '아빠! 어디가?'와의 차별점을 부각시키며 호응을 끌어내 오히려 '승자'가 됐다.

'불후의 명곡' 역시 마찬가지다. 2011년 방송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MBC '나는 가수다'의 인기를 좇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물론, KBS 내에서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불후의 명곡' 역시 '짝퉁'이란 오명을 안고 시작했음에도 꾸준한 자기 계발을 통해 성장하며 '독창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가수다'가 섭외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을 때 '불후의 명곡'은 아이돌부터 중견가수까지 출연자의 폭을 넓히고 '음악계 전설'이란 이름으로 톱 뮤지션까지 섭외해 눈길을 끌었다. '나는 가수다'가 종영한 후에도 KBS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KBS 예능국의 모방이 항상 창조의 발판이 됐던 건 아니다. 어설픈 기획력으로 형편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혹평만 들었던 경우도 있다. 2013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방송됐던 '엄마가 있는 풍경-마마도'가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방송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tvN의 히트작 '꽃보다 할배'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유사 콘텐츠다. '할배'라는 개념을 '할매'로 바꿔 유사 콘텐츠에 충성도를 보이는 시청자층을 끌어들이겠다는 시도였다. 하지만 '재미'와 '의미' 어느 쪽도 잡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지난 5월에도 '일밤-진짜 사나이'의 여군특집에 영향을 받아 '레이디 액션'이란 2부작 파일럿 예능을 선보였다가 혹평을 들었다. 여배우들이 액션에 도전해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 대응하려 했지만 촘촘하지 못한 기획으로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현재까지 KBS 내에서도 정규 편성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5월 새롭게 시즌2를 시작한 '인간의 조건'도 tvN '삼시세끼'의 콘셉트와 유사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최근에는 '어 스타일 포 유'가 '아프리카TV'를 통해 인터넷 생방송을 진행한다고 알리면서 다음팟에서 인터넷 생방송을 진행 중인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따라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들었다.

지난 1일 KBS 조대현 사장도 수신료 인상 관련 기자회견 중 이와 관련된 기사를 접했다며 "만약 타사 프로그램을 베낀 게 사실이라면 공영방송이 부끄러운 일을 한 게 맞다. 관계자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어 자신의 발언에 대한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오자 동석했던 오진산 콘텐츠창의센터장은 "자칫 시청자들이 'KBS가 타사 프로그램을 베꼈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기사를 함부로 쓰지 말라"며 대놓고 불쾌감을 표했다. 그만큼 KBS 내에서도 '베끼기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자리에서 입증됐다.

◆딱딱한 분위기가 창의력 저해

KBS에서 유독 타사 콘텐츠 모방 사례가 많이 나오는 건 '환경적 요인'이 크다. 비지상파에 비해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가 문제다. 공영방송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비지상파나 민영방송처럼 자유분방하고 통통 튀는 기획을 내놓는 일이 드물다. 트렌디한 기획을 내놨다가 '우리 채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얻는 일도 있다. 그나마 타 채널에서 성공시킨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차용할 때는 '히트작을 벤치마킹한다'는 명목을 내세울 수 있어 기획자 입장에서도 고위 관계자 설득 작업이 한결 수월해진다. 광고 수익 등을 목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타사 히트작을 벤치마킹하자는 의견을 내놓는 일도 있다.

앞서 KBS에서 '1박2일' 등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한 후 현재 CJ E&M으로 이적해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 화제작을 내놓고 있는 나영석 PD도 이 같은 KBS의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우수한 연출자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찾아 KBS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MBC나 SBS에서 타사 프로그램 모방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tvN과 JTBC 등 비지상파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지상파가 타사 프로그램의 장점을 차용하는 예가 갈수록 늘고 있다. 시작점은 Mnet이 '슈퍼스타K2'를 크게 성공시킨 2010년 후반부터다. 당시 MBC는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을 내놓고 '졸속 기획'이란 혹평을 들었다. KBS는 밴드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를, SBS는 가수 대신 연기자를 뽑는 '기적의 오디션'을 론칭했다.

이후로도 SBS는 육아예능 붐에 발맞추려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거의 유사한 '오! 마이 베이비'를 내놨다. 그리고 장성한 딸과 연예인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아빠를 부탁해'를 연이어 제작했다. 육아예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MBC도 지난해 10월 첫 전파를 탄 '헬로! 이방인'을 올해 1월에 조기 종영시켰다. JTBC '비정상회담'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외국인 출연자들을 불러모아 뭐든 해보자'며 졸속으로 기획했다 참패한 프로그램이다.

사실 국내 방송사의 프로그램 베끼기 관행은 수십 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다. 국내 시청자들이 해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1980'90년대에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차용해 자사 히트작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잦았다. 눈에 띄지 않으면 그만, 또는 수익만 올리면 그만이라는 마인드는 콘텐츠 생산자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다. 차용할 거라면 완벽하게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만이 '베꼈다'는 혹평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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