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보호자가 환자를 직접 돌보는 한국의 간병'문병 문화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 주범으로 지목된다. 가족을 간병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사례가 적지 않고, 보호자와 문병객이 별다른 제약 없이 병실을 드나들면서 감염 위험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가족 간병 문화가 메르스 확산 일조
대구의 메르스 확진 환자 K(52) 씨가 삼성서울병원에 머문 이유는 어머니의 간병 때문이었다. 고령인 어머니가 홀로 응급실에서 대기하며 입원 병실을 알아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탓이었다. 지난달 27, 28일 이틀을 보내는 동안 K씨뿐만 아니라 K씨의 아버지와 형, 누나 2명, 자형, 남동생까지 가족 8명이 응급실을 방문했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건 K씨와 K씨 누나였지만 다른 가족들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었던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메르스 확진 환자 172명 가운데 환자 가족이나 방문객이 감염된 경우가 59명(34.3%)이나 됐다. 가족들이 병원에서 직접 간병을 하는 한국인의 병원 이용 문화가 메르스 확산의 도화선이 된 것.
가족 간병 문화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수발을 들기 위해 간이침대까지 두고 병상을 지킨다. 보호자들은 환자 샤워실에서 목욕을 하고, 같은 화장실과 세면대를 사용한다. 가끔 환자식(食)을 나눠 먹거나 환자 침대에 누워 쉬기도 한다. 간병인을 두더라도 비용 부담 때문에 야간에는 가족들이 와서 지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바이러스나 각종 세균에 환자와 함께 무방비로 노출되는 현장이다.
두 달 넘게 어머니(66) 간호를 위해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머물렀던 주부 이모(39) 씨는 "병실에서 수발을 들지 않으면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면서 "가족과 아이까지 족히 20여 명은 병실을 들락거렸지만 면회가 제한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감염에 무방비 노출되는 문병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이모(80) 씨의 병실에는 하루종일 친척들로 붐빈다. 두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과 포항에 사는 동생 내외, 조카들까지 병원을 수시로 찾기 때문이다. 이 씨가 입원한 한 달여 동안 50명 넘게 병문안을 왔다.
이 씨의 조카(39'여)는 "고령인 큰아버지가 다쳐서 누워 있는데 오지 않는다면 예의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틈날 때마다 찾아가서 문안 인사를 드리거나 챙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출산을 하고 대구 달서구의 한 산후조리원에 입실한 김모(32) 씨는 메르스 여파로 면회가 금지되자 조기 퇴실을 요청했다. 김 씨는 "산후조리원에 있으면 시댁이나 친정식구들까지 두루 찾아와서 격려해 주는 게 일반적인데, 아무도 오지 못하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입원한 환자를 찾아가 위로하지 않으면 야박한 사람으로 여기는 문화는 감염의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이런 문화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병문안을 시간대별로 제한한다. 병원 측이 환자 병문안이 가능한 면회 시간을 환자에게 통보하면 환자는 친지나 지인 등에게 면회가 가능한 시간을 알린다. 환자의 보호자도 면회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환자를 만날 수 없다.
◆보호자 없는 병동이 해법…간호사 수급이 걸림돌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보호자 없는 병동', 즉 '포괄 간호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포괄간호서비스는 병원에서 보호자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가 간호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보호자가 병실에 상주하지 않고 전문 간호사가 간병을 하며, 의료진 외에는 병실 출입이 통제돼 감염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본부에 따르면 대구에는 대구의료원과 동구 한가람병원이 도입했고, 달서구 참조은병원이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한다. 경북은 김천의료원이 시행 중이고, 포항 세명기독병원은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간호인력을 현재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려야 하는 점은 걸림돌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간호사 1인당 담당 병상 수는 4.5병상으로, 미국(0.71), 영국(0.56), 일본(2.0)보다 크게 높다. 따라서 포괄 간호서비스를 도입하려면 현재보다 인력을 1.8배가량 늘려야 한다.
건보공단 대구본부 관계자는 "포괄간호서비스를 도입하려면 간호인력을 1등급 수준으로 확보해야 하지만 지역 병원 대부분이 3등급 맞추기도 힘겨워하는 게 현실"이라며 "시간제 고용이나 야간 전담 간호사 등 활동하지 않는 간호사 면허 소지자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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