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즉위한 것은 그의 나이 불과 스물두 살 때였다. 당시 조선의 사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북쪽에서는 오랑캐가 넘나들며 노략질을 일삼고 남쪽에서는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가뭄과 홍수로 인해 '흉작이 아닌 해가 없으며 창고는 거의 비어 백성을 구휼할 것이 없을 정도'(세종실록)로 삶은 피폐해 있었다.
세종은 안보와 경제난이라는 두 가지 짐을 지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나라 안팎으로 평안하고 나라의 창고를 넉넉하게 하겠다"고 했다. 이런 선언이야 역대 어느 왕이든 하고 또 했던 터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세종은 백성의 뜻을 알기 위해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들었다. 위민(爲民'백성을 위하여)과 여민(與民'백성과 더불어)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에는 하루 두 시간씩 윤대(輪對)했다. 윤대란 누군가와 돌아가며 독대하는 것이다. 미관말직에 있는 사람들도 수시로 불러 독대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전회의인 경연(經筵)을 통해 신하들과 소통했다. 경연은 태조 때 23회, 태종 때는 80회 열렸지만 세종 때는 1천898차례 열렸다. 경연엔 나이 든 관료와 젊은 집현전의 학자들을 함께 참석하도록 했다. 세종은 젊은 학자들의 생각을 궁금해했다.
세종의 밤은 구언(求言)으로 완성됐다. 구언은 백성들로부터 이야기를 구하는 자리다. 매일같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상소문을 검토하고 구언을 통해 밤늦도록 중요한 정책에 대해 백성들의 의견을 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대와 경연, 구언으로 이어지는 하루는 왕과 백성의 소통의 장이었다.
세종은 침묵하거나 대충 대세를 따르자는 회의 분위기에 반기를 들었다. 처음 관료들은 회의 안건을 올려도 서로 눈치 보기에 바빴다. 세종실록은 '임금의 옷을 붙잡고 강력하게 간언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과감한 말로 쟁간하는 자'가 없었다고 전한다.
세종은 정작 그 자신은 침묵하는 대신 침묵하는 신하들에게 더 많은 말을 하게 해 돌파구를 열었다. 의견을 밝힘으로써 국가 정책에 일정 부분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내는 신하들에게 관용적이었다. '고약해'는 사사건건 자신의 의견에 반대했다. 정도가 지나쳐 자신에게 눈을 부라리고 노려보거나 보란 듯 세종 앞에서 휑하니 나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세종은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를 대사헌에 임명했다. 대사헌이라면 오늘날의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다른 신하들도 마음껏 말문을 열라는 세종의 주문이었다.
한글을 만들 때 가장 극력하게 반대한 것이 최만리였다. 최만리는 한글 반포 이후에도 지나치리만큼 거칠게 한글 불가론을 외쳤다. 참다못한 세종이 내린 형벌은 하룻밤 옥살이였다.
세종은 일방적인 의견을 경계했다.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해 늘 '해보자'는 의견과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서도록 했다. 세종이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만 '해선 안 된다'는 쪽은 '왜 안 된다'고 하는지, '해보자'는 쪽은 '왜 해볼 만한지'를 들어보고, 이를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반대 의견을 평생 머리에 이고 살았던 세종 시대에 역사상 가장 많은 인재가 들끓고 찬란한 업적을 남긴 것은 곱씹어 볼 일이다. 대다수 선비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었고, 최윤덕과 김종서는 대마도를 정벌하고 4군 6진을 개척했다. 중국 역법이 아닌 우리 역법에 따른 농사가 시작되고, 이천 장영실 등 과학 인재들이 갑인자, 측우기를 만들어냈다.
박근혜정부가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말로만 국민을 앞세워서는 지지율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이 만나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 청와대 내외서 거침없이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 이들을 끝까지 내치지 않고 국민들에게 좋은 점을 찾아 결론을 맺는 것, 세종대왕이 던지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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