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구 사람이 그리 만만한가

"언젠가는 고향에 내려가 출마할 겁니다."

10여 년 전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경북고 인맥에 대한 기획물을 취재 중이었는데, 그가 들려준 가장 인상적인 발언이었다. 필자는 '언젠가는…'라는 말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찌감치 대구를 떠나 수도권에서 내리 당선됐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잘나가는 분이 고향으로 유턴하겠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했다.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명쾌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내년 총선에 대구 수성갑에 출마할 것이라고 한다. 10여 년 전에 했던 그 말을 이제야 실천하겠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끈질긴 집념과 소신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김 전 지사가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은 당시에 이미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이 특별히 좋아서도 아니고 3김(金)처럼 '지역주의'에 기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완성시키겠다는 복안이었던 것 같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맹렬하게 했던 진보적인 정치인으로서 기자에게 차마 이런 속내를 털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구 사회에서 김 전 지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대구경북에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과거 행적과 결부된 부정적인 평가가 훨씬 더 많다. 부정적인 평가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경기도지사 시절 수도권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람에 수도권 비대화에 일정 부분 공헌을 했고 결국에는 지역경제력의 축소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가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점은 분명하지만, 각종 규제로 민원이 끊이지 않던 경기도의 수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그런 후진적인 생각을 고수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두 번째는 2012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점이다. 그는 박 후보를 향해 "헌정사를 중단시킨 쿠데타(5'16)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후보"라고 공격했지만 상당수 대구경북인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공세가 되고 말았다. 이 대목도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 것이니만큼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다.

김 전 지사의 이런 행적은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그렇지만 김 전 지사가 대구에 출마하려는 의도는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 전 지사가 대구에 출마하려는 이유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 기반 확보를 위해서이지, 어떤 고매한 정치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대구를 바꿔 보려고 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바람에 잘 휩쓸리고 응집력이 약한 수도권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기에 대구에 내려와 '지역주의'의 구태를 한껏 발휘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蕩子)'의 모습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신의 대권 가도를 위해 고향을 이용하려는 것이기에 고향 사람들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필자는 내년 총선에서 김 전 지사와 경쟁자가 될 김부겸 전 의원과 특별히 친해서도 아니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좋아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랫동안 고향을 돌아보지 않아도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수 있다는 오만이 싫고, 자신이 당선되면 대구경북을 대권 가도로 가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그런 심보가 밉살스러울 뿐이다. 대구 사람들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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