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닉슨, 레이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1951년 서울생. 경기중고
1951년 서울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닉슨, 준비된 대통령이었지만 결국 사퇴

레이건, 위임·소통 중시…美 자존심 회복

박 대통령 모습에 닉슨의 망령 어른거려

소통 없이는 장관·참모들 아무 일도 못해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또다시 29%로 하락했다. 저조한 지지도도 문제이지만 부정평가가 60%에 달해서 긍정평가의 두 배에 이른다. 집권 3년 차 대통령 지지도가 이렇게 하락하다 보니 박근혜정부는 이미 실패했다는 다소 성급한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대통령의 실패와 성공을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을 비교해 설명하곤 한다.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닉슨은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시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닉슨은 재기에 성공했다. 196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어 당선된 것이다. 닉슨은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을 베트남에서 철수시켰고, 달러화 금태환을 정지시켜 새로운 국제통화질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닉슨은 막연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닉슨은 언론과 사이가 나빴으며 야당이면서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을 적대시했다. 세상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한 닉슨은 집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해서 모든 대화를 녹음하도록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나자 법원은 백악관에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명령했고 이에 불응한 닉슨은 탄핵 소추를 당한 끝에 결국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1980년대를 '보수의 시대'로 이끈 레이건은 미국의 자존심을 다시 회복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상대로 군축협상을 성공시켜서 동유럽 공산체제가 몰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레이건 리더십의 요체는 위임과 소통이었다. 레이건은 '위대한 위임자'이며 '소통의 대가'라고 불렸다. 레이건은 장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소관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고,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거나 중요한 안보 외교 사안이 있을 경우에는 백악관에서 몇 시간이고 장관 및 참모들과 함께 난상토론을 벌였다. 회의가 길어지고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레이건은 손수 젤리 빈을 나누어 주면서 흥분을 식히도록 했다. 레이건은 조지 H. W. 부시 부통령과 매주 한 번씩 점심을 같이하면서 국정 현안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레이건은 기자회견과 연설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또 이를 잘 활용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이지만 레이건은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노련한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유머와 위트를 섞은 답변으로 응수했다. 레이건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40주년 연설, 스페이스 셔틀 챌린저 폭발 후 가진 TV 연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한 연설 등 역사에 남을 연설문을 많이 남겼다. 레이건 임기 중 의회는 민주당이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레이건은 민주당 지도자인 팁 오닐 하원의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법안 통과를 부탁하곤 했다.

닉슨과 레이건의 경우를 장황하게 드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에서 닉슨의 망령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와 소통을 하기는커녕 여당 지도부와도 소통이 없음이 미국 방문 취소와 국회법 개정안 문제로 만천하에 알려졌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과도 공식회의 때 만나는 것이 전부일 것이고 장관들의 대면보고는 아예 없는 일이 돼버린 듯하다.

권한위임도 없고 소통도 없다 보니 장관과 참모들은 대통령 지시가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기자회견과 언론접촉을 피하고 있는 현상도 큰 문제다. 레이건 대통령의 백악관에는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유능한 참모들이 있었고, 레이건은 이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의 리더십이 땅에 떨어져 있을 때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제임스 슐레징거 국방장관 등 비중 있는 각료들이 미국과 세계를 지켰다.

대통령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믿을 만한 각료도 없다면 그 나라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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