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이 패전 위기에 몰리자 경멸했던 흑인 노예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다면 지금 미국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믿을까. 그러고 싶지 않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는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빅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이 패하자 흑인 노예들에게 남부를 위해 싸우면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항복하기 한 달 전 남부연합 의회는 흑인 모병법을 통과시켰다.
그 이유는 흑인의 뛰어난 전투 수행 능력 때문이다. 남북전쟁 중 18만여 명의 흑인이 북군에 입대해 싸웠는데 이들의 활약은 '흑인은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최초의 흑인 지원병 부대인 매사추세츠 54연대이다. 이 부대는 1863년 와그너 요새 공격에 투입돼 병력의 40% 이상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요새 함락도 실패했지만 이 전투에서 드러난 흑인 병사의 용맹함은 백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는 남부연합 병사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예도 훌륭한 병사가 될 수 있다면 '흑인은 열등하기 때문에 노예제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노예제 이론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혼란은 남부연합이 국제 여론을 의식해 노예제 전면 폐지를 내걸면서 극에 달했다. 당시 남부의 신문 '잭슨 미시시피언'은 "노예제는 우리가 전쟁을 시작한 이유의 하나지만, 독자적인 국가를 이룩하려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남군 병사들의 탈영이 속출했고 그중 일부는 북군 편에 섰다. 후방에서도 싸울 의지가 없었다. 전쟁 마지막 해인 1865년 봄 텍사스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북군이 오지도 않았는데 남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부연합이 패배한 배경에는 이런 이데올로기적 혼란이 있다는 것이 미국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흑인교회 총격 사건으로 인한 미국의 남부연합기 퇴출 운동이 제퍼슨 데이비스 등 남부연합을 이끌었던 인물의 동상 철거 등 남부 문화 청산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슬람국가(IS)의 문화재 파괴 행위와 비슷한 '문화 청산'이라며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실소가 나온다. 그들이 말하는 남부 문화란 백인 우월주의에 기댄 차별과 배제의 문화다.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는 이미 남북전쟁을 통해 거짓 이데올로기임이 드러났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역사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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