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베스트셀러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으로 한국문학이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글쎄다. 신경숙 씨가 대표적 인기 작가라고 하지만 한 작가의 표절 논란이 곧 한국문학의 위기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기가 아니란 말인가? 확실히 위기다. 표절 논란 때문이 아니라 작가는 있되, 독자가 없는 한국문학의 현실 때문이다.

한국인은 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말일까? 아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00만 부 이상 팔렸고, '칼의 노래' '마시멜로 이야기'는 130만 부, '엄마를 부탁해' '1Q 84' 등은 200만 부 이상 팔렸다. '장길산'은 450만 부, '인간시장'은 570만 부, '태백산맥'은 700만 부나 팔렸다. 그럼에도 독자가 없다니?

영상물과 스마트폰에 책이 밀려났다고 하지만 1년 혹은 2년에 한 번은 100만 부를 훌쩍 뛰어넘는 베스트셀러가 꾸준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들면 독자가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해 베스트셀러 1위 책이 100만 부 판매됐다면 2위는 얼마나 팔렸을까? 어떤 학급의 성적 1등 학생이 100점이라면 2등은 90점은 넘는 게 일반적이고, 3등도 그 언저리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베스트셀러 1위가 100만 부 팔릴 때 2위는 10만 부도 팔리지 않는다. 그 아래 순위는 말할 것도 없다. 소문난 책에 대한 독자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이다. 그래서 일부 출판사들은 불법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일단 순위만 올리면 이유 불문하고 팔리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은 어째서 베스트셀러 편식이 유난히 심한 것일까.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책이 내게 맞는지 모르니 남들이 읽는 책을 읽기 때문이다. 거름 지고 장에 가는 격이다. 거름 지고 장에 가본들 시간낭비일 뿐이다. 남들이 읽으니 나도 읽기는 했는데,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게 몇 번 허탕 치고 나면, '베스트셀러가 이럴진대, 나머지는 안 봐도 뻔하다'며 외면하기 일쑤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을 합치면 1만5천 명이 넘는다. 문학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더하면 작가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이 많은 작가들 중에 연간 인세로 3천만원을 벌 수 있는 작가는 10명이 안 된다. 절대다수 작가들의 책은 단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 팔리지 않으니 출판사는 책을 펴내려 하지 않고, 서점들은 잘 안 팔리는 책을 진열하려 들지 않는다. 작가는 있되 독자가 없는 현실. 이것이 한국문학의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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