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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違心詩(위심시)…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일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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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일이 없네-이규보

인간 세상 온갖 일들 그야말로 들쑥날쑥

걸핏하면 뜻과 달라 술술 풀리는 게 없네

한창 때는 가난하여 아내께도 괄시 받고

늘그막에 돈 많으니 기생들이 줄을 서네

어디 놀러 가려 하면 비 오는 날이 많고

놀러 갈 일 없을 때는 쓸데없이 날이 맑네

배 불러 못 먹을 땐 느닷없는 양고기요

목구멍에 종기 나자 난데없이 웬 술이냐

숨긴 보물 싸게 팔자 그 시세가 올라가고

고질 병 고치고 나니 이웃집에 의사로다

이 세상 잡다한 일들 모두 다 이 같거늘

부와 벼슬, 학 타는 걸 어찌 함께 누릴쏘냐

人間細事亦參差(인간세사역참치)

動輒違心莫適宜(동첩위심막적의)

盛歲家貧妻尙侮(성세가빈처상모)

殘年祿厚妓將追(잔년록후기장추)

雨霪多是出遊日(우음다시출유일)

天霽皆吾閑坐時(천제개오한좌시)

腹飽輟飡逢羙肉(복포철손봉고육)

喉瘡忌飮遇深巵(후창기음우심치)

儲珍賤售市高價(저진천수시고가)

宿疾方痊隣有醫(숙질방전인유의)

碎小不諧猶類此(쇄소불해유류차)

楊州駕鶴况堪期(양주가학황감기)

[違心詩(위심시) 戱作(희작)].

*위심: 마음대로 안 됨. *희작: 장난삼아 지음. *양주가학: 여러 가지 좋은 일이 겹침.

고려시대의 걸출한 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장난삼아' 지었다는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 속의 상황을 보면 장난 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데다, 앞앞이 한숨이요 구석구석이 죄다 눈물이다.

한창 젊어서 정력이 불끈불끈 넘쳐날 때는 너무 가난하여 아내에게조차도 남자 대접을 받지 못했다. 돈을 좀 벌고 나니 기생들이 앞에 줄을 죽 섰지만, 이미 늙고 힘이 없다 보니 그림 속의 떡이나 다름이 없다. 어디 야유회라도 가려고 하면 갑자기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고, 집에서 탱자탱자 지내는 날엔 하늘이 쓸데없이 시퍼렇게 맑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면 느닷없이 제비초리에다 곰발바닥이 쏟아져 나오고, 목구멍에 종기가 나면 팔자에도 없는 죽엽청주(竹葉淸酒)가 밀어닥친다. 보물을 헐값으로 팔고나면 시세가 갑자기 뛰어오르고, 고질병을 가까스로 고치고 나면 이웃집에 명의가 이사를 온다.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장난삼아 시를 지으면서 이렇게 놀 수가 있었으니,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네.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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