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사퇴한 유승민,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당 의원총회의 권고를 수용해 사퇴했다.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지 40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지 13일, 지난 2월 2일 원내대표로 선출된 지 156일 만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거부권 정국'으로 빚어진 내분을 추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의 골이 너무나 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낙관할 수 없어 보인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는 불가피했다. 박 대통령과의 갈등을 촉발한 직접적 원인이 정치철학의 차이가 아닌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냐 아니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이야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을 여지가 있지만, 위헌 여부라는 문제는 그럴 수 없다. 위헌이면 야당의 국회법 개정 요구를 들어준 유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하고 위헌이 아니라면 거부권을 행사한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지 않은 이상 위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헌재의 심판을 받아보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공포되지 않은 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수용하고 위헌심판을 제청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위헌 판결이 날 경우 그것도 판단하지 못하느냐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위헌이 아니어도 역시 같은 이유로 박 대통령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유 원내대표의 중도하차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했지만 그의 정치적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유 원내대표는 취임 연설에서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내걸었다. 이는 기존의 보수진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수의 혁신'이란 점에서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는 유 원내대표의 큰 정치적 자산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정책과 필요한 의제 설정으로 '보수혁신'의 내용을 채워간다면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번 사태로 그가 정치적 타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긴 안목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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