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파생된 문구다. 소문의 빠른 확산 및 그에 따른 파장이 미치는 영향을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는 풍문이 그 정도의 전파력을 가지는데 이동통신망까지 구축된 지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루머에 희생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증권가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던 미확인 정보의 발생량이 급증하고 모바일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가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주에도 배우 이시영과 김보성이 속칭 '찌라시'의 주인공으로 지목돼 큰 피해를 입었다. 책자 형태에서 전자문서로, 또 문자메시지 형태로 진화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찌라시에 대해 알아봤다.
◆이시영 동영상 루머, 모바일 메신저 통해 확산
소위 '이시영 동영상 루머'는 지난달 30일 오전 SNS와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 전파됐다. '배우 이시영 섹스 동영상 발견, 검찰 조사 중'이라는 충격적인 타이틀을 내세운 글이었다. "아마추어 복싱 등 건강한 이미지로 유명한 배우 이시영의 섹스 비디오가 발견돼 검찰이 동영상 등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있다. 기획사가 협박용으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파일의 실체가 이시영과 현 기획사 측이 싸우면서 알려지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심지어 이시영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조기에 발견됐다는 내용까지 기정사실인 양 알리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증권가 찌라시 형태였지만 강도가 높아 순식간에 화제로 떠올랐다.
워낙에 직설적이고 확신에 찬 듯한 톤의 글이라 연예부 기자들도 사실확인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시영의 소속사에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고, 결국엔 이시영 측이 보도자료를 내고 찌라시의 내용이 허위라고 알렸다. 동시에 "최초 유포자를 비롯해 근거 없는 비방 및 루머를 확산한 모든 주체를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 날인 7월 1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하며 "최초 유포자를 찾아냈을 경우 어떤 협의도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선처는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일단 해당 찌라시의 내용은 '루머'였던 것으로 정리됐다. 실제로 앞서 타 여자 연예인의 섹스 동영상 유출 사건이 일어났을 때와 달리 이시영 사건에는 '실체'가 없다. 온라인 상에 소위 '이시영 동영상'이란 제목의 영상물이 떠돌기도 했지만 그 안에도 이시영은 없다. 이시영을 연상시킬 만한 외모의 여성이 등장한 영상물에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3년 전 소속사를 옮길 때에도 외부에 알려질 만한 큰 문제가 없었고, 그 후 현 소속사와도 호흡을 맞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니 회사 측과의 갈등에서 불거진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의혹은 더 커진다. 순전히 거짓말로 이뤄진 글을 일부러 작성하고 외부로 퍼트린 이의 존재와 그 목적에 대한 궁금증이다. 최근 자주 불거지는 온라인 내 유명인 비방사건과 마찬가지로 철없는 10대들의 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 흔히 증권가 찌라시가 그들 내에서 공유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것처럼 무분별하게 작성된 내용을 주고받다 유출돼 문제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글의 내용 자체가 '장난' 또는 단순 정보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친다. 이시영을 의도적으로 음해하겠다는 목적, 또는 그 뒤에 다른 배경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이시영에 이어 김보성도 찌라시로 인해 피해를 봤다. "한 영화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가 즉흥적으로 대본에 없던 연기를 하며 상대 여배우를 성적으로 불쾌하게 만들어 경찰에 신고까지 접수됐다"는 내용의 찌라시가 확산됐고, 김보성이 이 글 속의 남자배우로 지목되면서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이에 지난 4일 김보성 측은 "현재 촬영 중인 영화는 친구인 감독과의 의리로 출연하게 됐고, 개런티도 스태프들을 위해 전액을 내놨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성추행 관련 찌라시로 인해 김보성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김보성이 해당 찌라시의 주인공이 아님을 확실히 알렸다. 또한 최초 유포자 등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을 확고히 했다.
◆증권가 찌라시, 어떻게 만들어지나
증권가 찌라시로 인한 폐해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증권가 내에서 관계자들끼리 주고받던 정보지의 내용이 알려져 소문으로 확산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모바일을 통한 손쉽고 빠른 전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데스크에게 '정보보고'를 하듯 여기저기서 들은 내용을 묶어둔 글 한 편이 불쑥 모바일 메신저나 SNS에 올라오면 이를 본 사람들이 '퍼 나르기'를 시작한다. 워낙 확산 속도가 빠르고 파장이 커 불확실한 정보임에도 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허무맹랑하거나 지극히 불확실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꽤 신빙성 있거나 심지어 정확히 사실을 짚어낸 것들도 있어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생각하고 넘기긴 힘들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찌라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거창하게 화두를 던졌지만 사실 찌라시의 생산자를 밝혀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퍼트리는 일 자체가 명예훼손 등 다양한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불법적인 일인 만큼 찌라시의 생산 과정 역시 음성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증권가 찌라시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부터 짚어보자. 이름 그대로 증권가 찌라시는 증권 시장에서 동향 파악을 위해 관계자들끼리 주고받는 정보지다. 주가 변동 사항 등을 예견하고 체크하기 위한 회의체에서 공유하기 위해 업계 전반의 정보를 담아둔 문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만나본 증권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정보지에는 주로 기업 관련 내용을 채워 넣지만 종종 연예계 관련 소문들을 '안줏거리' 삼아 끼워넣는 경우가 있다. 골치 아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분위기를 환기시킬 만한 소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인의 사생활 관련 내용은 임원들의 기분을 풀어주고 화기애애한 회의를 끌어나가는 데 적절하게 쓰였다.
윗선에 보고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문서인 만큼 다양하고 정확한 이야깃거리들을 모으는 것도 큰일이 됐다. 자연스레 이 정보지를 만드는 모임이 만들어졌으며 비밀리에 멤버가 구성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지는 책자 형태로 엮여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판매'됐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과거 증권가 찌라시가 만들어져 유통되던 과정이다.
이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찌라시는 메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SNS와 모바일 메신저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 찌라시의 전파 속도 역시 한층 빨라졌다. 찌라시의 내용 중에서도 연예계 소식은 어떠한 확인절차도 없이 그저 흥밋거리로 여겨져 더 많은 이들이 공유한다. 연예계 관련 찌라시의 발생 숫자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다.
최근에는 언론사 기자의 신상을 다룬 찌라시까지 속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찌라시 작성자 그룹에 언론사 관계자가 들어갔을 거란 추측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후죽순 튀어나오는 파편적인 찌라시를 누가 만들어내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젠 '따로 만들어진 팀'이 아니라 개인이 작성하고 유통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무책임한 정보의 유출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문제의식 확보가 절실한 때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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