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의무병으로 전입해온 박동혁 상병(이현우)에게 한상국 하사(진구)가 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인 한국과 터키의 경기가 열리던 날 일어났던 제2 연평해전을 소재로 삼고 있다. 북한 함정의 공격으로 우리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있던 장병 6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남북 대치의 현실을 일깨우고 희미해진 사건의 흔적을 끄집어낸다. 당시 월드컵의 흥분만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늦었지만 항변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 때문이었을까. 500만 관객을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학생이나 장병 등의 단체관람이 이어지고 있단다. 관객 숫자로 보면 국민들은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응답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연평해전'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이는 영화의 완성도와 관객의 숫자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눈물은 있지만 감동은 없듯이 말이다. 같은 민족의 젊은이들이 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는지에 대한 대답이 없기도 마찬가지다. 언뜻언뜻 비치는 진영논리가 개봉 전부터 앞다투어 바람몰이를 한 일부 보수 언론의 행태와 스치는 것도 그렇다.
'연평해전'을 애국적 마케팅과 궁합이 맞는 반공영화, 아니 전쟁영화라고 하자. 사실적 내용이나 정치적 잣대와는 상관없이 이런 영화를 보면 안타까운 의문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병역의무는 얼마나 공정할까 하는 생각이다. 때마침 병역법이 바뀌어 이달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이처럼 기피자의 인적을 공개하는 것은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특히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해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구심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한 언론 조사를 보면 일반인의 군 면제율이 6.4%인데 비해 재벌들의 면제율은 33%에 이르고, 그중에서도 삼성가는 73%였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의학적인 사유에 의한 군 면제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닮은꼴 면제 사유다. 몸이 아파 군에 못 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일반인과 비교해 왜 그토록 면제 비율이 높고 대물림까지 되는지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이런 궁금증을 그대로 둔 채 벌이는 군 기피자의 신상 공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른바 신이 내렸다는 군 면제자에게 향한 따가운 시선을 흐트러지게 하는 효과는 다분할 것이다. 병역의무의 공정성을 허물어뜨리는 주범은 군 기피자보다 갖은 방법으로 이를 악용하는 군 면제자이기 때문이다.
'연평해전'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지만 일찌감치 막을 내린 영화 '소수의견'이 있다. 2009년 일어난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해 '연평해전'과는 여러모로 비교되지만 뒤끝의 씁쓸함만은 다르지 않다. '소수의견'의 끝 부분에는 증거를 조작했다가 옷을 벗은 홍제덕 검사(김의성)가 그의 증거 조작을 폭로한 윤진원 변호사(윤계상)를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은 국가의 봉사자이지만 부조리를 세상에 드러낸 윤진원 변호사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치부한다.
이 같은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홍제덕 검사처럼 일그러진 일탈에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이와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이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해서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고 믿었던 '연평해전'에선 크게 달랐을까. 그럴싸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은 홍제덕 검사의 대사는 이렇다.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결국엔 그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거야."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