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주요 대선공약 헌신짝 취급
유승민 축출한 與, 개혁 스스로 포기
야당의 실패·노년층 민심에 기댄 당청
TK 여론주도층부터 자성 목소리 내야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압력에 백기를 들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은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그렇게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자체가 병적(病的)이다. 유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가 불과 며칠 사이에 180도 바뀐 것도 한심하고, 새로 구성된 당 지도부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알현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전(前)근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국정이 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고 "창조경제는 되는 것이 없다"고 언급해서 대통령을 자극했지만 유 의원의 발언은 100% 맞는 말이다. 세상 사람은 모두 알고 있지만 대통령만 모르고 있으니 이솝 우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10년 동안 들어오고 있지만 요즘처럼 민생경제가 힘든 적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총부채는 날로 상승하고 있는데, 공공 분야 부채뿐 아니라 개인부채도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 철강 등 우리 경제를 뒷받침해 왔던 중공업이 흔들리고 있는 등 산업계의 상황도 심각하다. 이명박정부는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 개발 등으로 막대한 재정 적자를 기록했는데,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가 늘려놓은 적자 폭을 줄이기는커녕 더욱더 확대시키고 말았다. 재정 건전성을 덕목으로 삼아야 할 보수정권이 나라 곳간을 탕진하고 있는 꼴이다.
임기의 절반을 보낸 박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도 제시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자신이 2012년 내걸었던 중요한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새누리당은 이처럼 개혁과 쇄신을 약속함으로써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데 그런 약속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없었던 것으로 해 버린 것이다.
엄중한 약속을 저버린 새누리당은 혁신이나 쇄신을 내걸 자격을 상실했다. 유승민 의원을 축출해 버림으로써 새누리당은 그나마 남아 있던 개혁과 쇄신의 싹을 잘라 버렸다. 고정 지지층을 넘어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꾸준히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상실한 정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그나마 야당이 혼란과 분열 위기에 빠져 있어서 새누리당에게 반사적 이익을 안겨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차세대 주자로 부각되어서 내년 총선에서 김무성 대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박 대통령에 의해 박해를 당한 유 의원이 새누리당의 '자산'이 됐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유 의원이 새누리당의 '자산'이 되기 위해선 원내대표직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잠재적 자산을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이 직접 찍어 냈는데, 그러고도 어떻게 유 의원을 여당의 '자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야당의 실패와 콘크리트 같은 TK의 지지, 노령연금으로 장악한 노년층 민심, 그리고 무기력한 공영방송과 기울어져 있는 종편 방송에 기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새누리당과 청와대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과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이제는 국정원 해킹 의혹까지 온갖 의혹만 난무했다.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는 이 정권이 위기를 관리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의 인사 실패와 불통임은 이제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 이어서 보수정당이라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연이어 정권을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은 대구경북이기에 TK 유권자들은 두 개의 정권을 창출해냈다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실패했고, 박근혜 정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TK의 여론주도층부터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하고 자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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