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롯데 경영 2선 물러난 창업주 신격호는 누구?

'껌 값'으로 일군 세계 74개 계열사…1990년 세계 억만장자 9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되면서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나게 됐다. 그는 롯데홀딩스 명예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고 한국 롯데그룹에선 총괄회장의 직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난 신 총괄회장은 1941년 만 19세의 나이에 사촌형이 마련해 준 여비를 갖고 일본에 건너갔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던 중 한 일본인 사업가로부터 5만엔을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1944년 도쿄 근교에 윤활유 공장을 세웠으나 미군의 폭격을 받아 가동도 못 하고 불타 버렸다. 하지만 그는 다시 우유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일해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하루 200곳이 넘는 상점에 물건을 납품했다.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고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어 미군이 주둔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껌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20개국에 74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그룹의 첫걸음이었다.

1961년 초콜릿 사업으로 눈을 돌린 그는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종합 식품 메이커로 부상했다.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1974년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를, 1977년 삼강산업을 인수해 롯데삼강을 각각 세우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1973년에는 롯데호텔을 열어 관광산업 현대화의 기반을 마련했고, 1979년에는 롯데쇼핑을 설립해 유통 현대화의 토대를 구축했다. 1978년에는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를, 이듬해에는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을 인수해 건설과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했다.

식품-관광-건설-화학 등 진용을 갖춘 신 총괄회장의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친다.

롯데호텔은 1988년에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열고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일조했다. 이런 고속 성장에 힘입어 신 총괄회장은 19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9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대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롯데 그룹을 재계 서열 5위로 올려놓았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준호 푸르밀 대표이사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은 모두 그의 동생이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 휠체어에 주로 의지하지만 건강에 큰 문제는 없는 상태다. 하지만 정신적 측면에선 '노화에 따라 다소 약해진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논리적이고 주관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선 아무래도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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