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번진 말이 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외쳤다. 와, 멋지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부럽다. 세 번째는 슬프다. 마지막으로 화난다!에까지 이르렀다. 왜 이 말은 우리에게 또 다른 펀치처럼 날아와 가슴에 멍이 들게 하는지. 친구들은 '왜 내 가슴은 안 뛰는 거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김예슬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중에서)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사라진 죽은 대학을 거부한' 고려대 김예슬 학생이 학교를 자퇴한 지 4년이 넘었지만, 교육 현실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제도의 문제를 아이들의 성향과 능력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며, 교묘히 가식적인 말로 아이들을 더욱 무력감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퇴를 하겠다는 반 아이를 붙잡고 꼬박 한 달 동안 설득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꽉 짜인 학교생활이 답답하고,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이질감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가는 평범한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길이고, 담임교사로서 책무이며 열정이라 생각하며 대화를 했지만 결국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몇 달 후 아이가 어떻게 지내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의 결정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예상 밖으로 담담하다. 아이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검정고시 학원과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으며, 마음도 많이 편해진 것 같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독 심해지는, 자퇴 무렵에 심해졌던 아토피도 거의 가라앉았다고 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전화를 끊는데 가슴 한쪽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상처와 딱지로 온몸을 뒤덮을 정도로 학교생활은 아이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였는데, 나는 그 아이를 붙잡고 있었단 말인가? 왜, 도대체 학교가 무엇이기에…. 그 일 이후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옅어졌다.
'도대체 학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화두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 고3이니, 대한민국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며 피곤함에 지친 아이를 다독이는데 '공범'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16년차 대한민국 교사인 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성실한 교사'로 자위하며, 이 시스템이 견고하게 유지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순된 시스템에 저항하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니 '개인'의 방식대로 해결하라며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눈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기에 더욱 무력하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온몸으로 우리 교육의 민낯을 보여준 그 아이의 몸짓에, 울림에 작은 응답을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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