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태맹의 시와함께] 뒤-전동균(1962~ )

꽃이 오고 있다

한 꽃송이에 꽃잎은 여섯

그중 둘은

벼락에서 왔다

사락 사라락

사락 사라락

그릇 속의 쌀알들이 젖고 있다

밤과 해일과

절벽 같은 마음을 품고

깊어지면서 순해지는

눈동자의 빛

죽음에서 삶으로 흘러오는

삶에서 죽음으로 스며가는

모든 소리는 아프다

모든 소리는 숨소리여서

- 멀리 오느라 애썼다,

거친 발바닥 씻어주는 손들이어서

아프고 낮고

캄캄하고 환하다. (……)

(부분. 『우리처럼 낯선』. 창비. 2014)

가끔 어떤 시는 해설 같은 것 달지 않고 끝까지 노래처럼 듣고 싶은, 들려주고 싶은 시들이 있다. 이 시도 그러한데, 시의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 시는 구체적 그림을 우리에게 표상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무엇'이 시에 내리고, 젖고, 흘러오고, 스미고, 걸어오고 있다. 사락 사라락… '숨소리' 같은 이 소리말은 마지막엔 '사락 사그락'으로 바뀐다. 그 묘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다른 방향으로 몸을 트는 이의 옷자락 소리 같은.

설명하지 않아도 삶과 죽음에서 오는 모든 소리는 아프다. '아프고 낮고 캄캄'하다. 그러나 이 소리는 우리의 숨소리여서, 멀리 가느라 애쓰는 우리의 숨소리여서, 우리는 환하다. 환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을 뿐더러, 얼마간은 벼락에서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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