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유로터널 난민

유럽 어느 나라든 비행기나 열차, 자동차를 이용한 월경(越境)이 수월하다. 하지만 배편을 이용하면 상황이 크게 다르다. 입국 수속이 까다롭다. 뱃삯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아프리카'중동 등지의 입국자 중 불법 체류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가려내려고 심사를 더 엄하게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까다롭게 군다. 소지한 현금까지 조사한다.

1991년 첫 유럽 출장 때 도버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유로터널이 생기기 전이라 영국은 비행기나 배편이 전부였다. 일정상 프랑스 칼레에서 배편으로 도버에 도착했는데 출입국관리 직원의 태도가 매우 딱딱했고 눈초리부터 달랐다. 통독 직후라 여권에 끼워둔 동베를린 훔볼트대학 교수의 명함을 보고는 직업과 방문 목적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 1994년 5월 유로터널이 뚫렸다. 칼레와 도버 남서쪽 포크스톤을 잇는 55㎞의 해저 터널로 유럽 전역에 많은 변화를 불러 유럽 통합의 상징물로 불린다. 영국과 프랑스가 해저 굴 파기 작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1882년이다. 그러나 영국의회가 보안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1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1980년대 후반 터널 공사가 재개되기까지 100년이 흘렀다.

2차 대전 이후 최대 난민 위기로 불릴 만큼 최근 유럽에 아프리카'중동 난민이 대거 몰리면서 유럽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이 유로터널로 몰려 최근 두 달 사이 10명이 감전사나 질식사하는 등 '난민의 무덤'이 되고 있다. 지중해를 건너다 숨지는 난민 수도 부지기수다.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영국 캐머런 총리가 TV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a swarm of people)이 영국으로 오고 싶어 한다"고 말하자 난민구호단체 등이 비인간적인 발언이라며 비판했다. '스웜'이 메뚜기'벌 등 곤충 무리에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자를 동물 무리로 보는 인식이 영국 총리 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영국은 난민이 선망하는 정착지다. 신분증 제도가 없고 일자리 구하기가 쉬운 데다 망명자에게 생활 지원금도 주기 때문이다. 탈북자나 조선족이 영국에 많이 정착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에 대한 영국의 규제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불법 이민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나 사람을 벌레 보듯 하는 것은 지나치다. 특히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역사의 행패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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