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회 정치제도 개혁]②비례대표 국회의원

원칙은 '전략공천' 보장…입법 전문성 확보, 현실은 '계파공천' 빌미…소신 정치 족쇄로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국회의원 정수 조정 논의의 핵심은 전체 의원 가운데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비중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결정하느냐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의원 수를 현행 54명으로 동결하거나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선거구별 인구 편차 2대1)과 인구증가에 따른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동결할 경우 비례대표 의원 수는 불가피하게 줄여야 한다는 것,

반면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등 소수정당은 비례대표 의원의 비중을 크게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는 승자독식 구조로 절반에 가까운 사표가 발생할 뿐 아니라 대표성도 심각하게 훼손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새정치, 권역별 비례대표 제안

흔히 '전국구 의원'으로 불리는 비례대표 의원은 현재 54명이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25명, 민주당 21명, 통합진보당 6명, 자유선진당 2명씩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했다. 정당투표 득표비율에 따라 의석이 배정됐다.

비례대표 의원은 장애인'여성'다문화 가정'청년실업자 등 특정 계층과 과학기술계'의료계'노동계'산업계 등 일정 직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정보화'산업사회의 발달로 유권자가 자신이 사는 지역보다 계층 또는 직역에 소속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면서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가령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치과의사 김상일(가명'57) 씨 가족의 경우 김 씨의 부인은 남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두 딸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이들 모두 수성구 유권자지만 김 씨는 의료계 출신, 부인은 영유아 정책 전문가, 두 딸은 청년실업 상황을 공감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로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고안됐다. 한 선거구에서 당선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의 경우 4명의 후보가 나와 30%를 득표한 후보가 1위로 당선되면 나머지 후보에게 투표한 70%가 사표가 된다. 지난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치러진 13~19대 총선(지역구)에서 당선자들이 얻은 표는 평균 987만8천727표(49.1%), 낙선자들이 얻은 표는 이보다 더 많은 1천23만2천362표(50.9%)였다.

현재 우리나라 비례대표 의원은 전국단위 정당명부식으로 선출되고 있다. 정당이 제시한 비례대표 명단을 보고 유권자들이 해당 정당에 지지를 표시하면 전국단위의 정당득표율에 의해 54개(전체의 18%) 의석이 배분된다.

새정치연합이 주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 선출방식은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과 별도로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비례대표 의원 명단을 제시하고 해당 지역에서의 정당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지방자치 강화와 정당 지지도와 의석 점유율 간 격차 해소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천과정 불투명…잡음 사례도

하지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 비례대표 의원제도 역시 애초 기대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는 당 총재가 오랫동안 자신 곁에서 허드렛일을 한 '후배'나 충성을 맹세한 정치 신인에게 '금배지'를 선물하는 방편으로 비례대표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전략공천형 비례대표 순번 배정이 정치권에 '젊은 피'와 전문가를 충원하는 순기능을 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당 총재의 선택이 옳았는지 책임을 묻는 장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세다.

또한 제왕적 총재가 사라진 후에도 비례대표 제도는 계파정치의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자신에게 비례대표직을 준 당 지도부와 공천권을 행사한 의원들에게 소신 있는 정치행위와 발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재력가를 비례대표 당선권 순번에 배정하는 조건으로 '특별당비'를 받아 쌈짓돈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력가를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정하는 조건으로 당 총재가 특별당비를 받아 이를 상대 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에게 전달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며 "정치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았던 옛날이야기지만 지금도 이 같은 유혹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비례대표로 등원한 국회의원들 역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기보다 차기 총선에 나설 지역구에 씨앗을 뿌리는 일(지역구 활동)에만 몰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경태 새정치연합 의원은 "19대 국회에 입성한 새정치연합 비례대표 의원의 70% 이상이 지역구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금의 비례대표는 지역구 출마의 발판으로 악용되고 있는 등 비례대표 고유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비례대표 제도가 이처럼 부작용을 양산하는 이유는 공천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결과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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