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어느 도시 치고 여름에 덥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대구는 유난히 더운 지방으로 소문이 단단히 나 있다. 오죽하면 '대프리카'라는 별명까지 얻었겠는가? 모교인 대구가톨릭대학교에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신학생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마저도 여름이면 구슬땀을 줄줄 흘리면서 "덥다, 덥다"를 연발한다. 그네들 고향은 적도 부근이니 대구 날씨 정도로 어디 더운 축에 들겠느냐고 물어보면, "아니에요! 대구가 훨씬 더 더워요!" 하고 잘 믿어지지 않는 대답을 한다.
진품 아프리카도 한 수 접어주는 대프리카에서 나고 자랐으니 어지간한 더위에는 이골이 났을 법도 하건만, 지난주에는 제대로 여름 맛을 보았다. 뚱뚱한 체질이라 본래 더위를 많이 타는데, 하필 연중 가장 더운 이때에 에어컨디셔너가 덜컥 고장이 났던 것이다. 고치는 동안 잠시만 참으면 되려니 하고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삼복더위에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바로 에어컨디셔너 수리기사였을 줄이야! 아무리 빨라도 사흘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에 잠시 아찔했다. 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으니, 되도록 급히 와주십사고 다짐을 두고는 참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냉방 덕을 보고 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대장부가 이까짓 것을 견디지 못하랴.
나흘이 지나서야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분이 오셨다. 찬바람이 나오자 어찌나 고맙고 반가웠던지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대장부 운운하면서 호언을 했지만 사실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기사분에게 음료수라도 하나 드시라고 권하는데, 그제야 그분의 전신이 땀범벅인 것을 보게 되었다. 조금 쉬었다 가시라고 했더니 오늘 하루에 다녀야 할 집이 스무 집이나 되어서 그럴 수가 없단다. 늑장 수리라고 은근히 원망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신부님, 음료수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하고 극진한 인사까지 받으니, 그 신부님 소리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뜨뜻해졌다. 이 한더위에 땡볕을 받아가며 수고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냉방은커녕 목욕물조차 아쉬운 이들이 있는데, 한 사나흘 더위에 잠을 설친 것은 투덜거릴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참기가 힘들고 짜증이 났을까? 아마도 아쉬운 줄 모르고 참을 일이 적다 보니 연습이 부족했던 탓이리라.
보통 천주교 성직자를 신부라고 부르지만, 달리 탁덕(鐸德)이라고도 한다. 방울 탁에 클 덕인데, 종을 울려 때를 알리듯 세상에 덕을 깨우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명색이 성직자라는 사람이 작은 불편도 참을 줄을 모르면 무슨 덕을 깨우치겠는가? 어깨만 부딪혀도 눈을 부라리고, 급하게 끼어든 차에 보복을 한답시고 목숨을 거는 세상이다. 냉방 꺼진 것이야 작은 일이지만 아무도 양보할 생각이 없고 모두가 '내가 왜 참아야 하느냐'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일이다. 피할 수 있는 고생을 굳이 감수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는 법, 이웃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더 삭막해지기 전에 참고 견디는 훈련을 할 일이다.
정태우 천주교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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