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광복절 반성

일본 가고시마현 치란 마을. 태평양 전쟁 막바지 가미카제 비행학교가 있던 곳이다. '치란 특공기지' 인근 '부옥식당'(富屋食堂)은 가미카제 훈련생들이 외출 나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던 곳이다.

기록관에는 가미카제의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돼 있고, 종일 '아리랑'이 흐른다. 조선 출신 특공대 탁경현이 출격 전날(1945년 5월 10일)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유품을 식당 주인에게 맡기면서 부른 '조국의 노래'를 식당 주인이 기억했다가 수집한 음악이다.

엊그제 우리나라 정치권은 14일 발표될 일본 아베 총리의 담화에 사죄, 식민지배, 침략에 대한 반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사실 다수 일본인들은 한국에 사과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그들은 1941년부터 45년까지 미국과 치른 전쟁을 '2차 세계대전'이나 '태평양 전쟁'이라고 칭하는 대신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른다.

서양에 맞서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동아 블록을 형성해 독립된 권역을 만들겠다는 것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일본의 '대동아 전쟁'은 동아시아를 서방 제국주의로부터 지키기 위한 전쟁이 된다.

'전쟁은 서양에 대한 일본과 동아시아의 저항이었다. 이 전쟁에 일본 병사는 물론, 조선과 대만 병사들까지 참전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인과 대만인도 14명이나 된다. 조선인 특공대는 조국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며 비장하게 출격했다. 그런데 무엇을, 왜, 반성하라는 말인가?'

가미카제 기록관에서 아리랑을 듣고, 특공대원들의 사진과 유품, 미군 함대를 향해 돌격하는 비행기 동영상을 보며 자라는 일본 학생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같은 역사를 두고 인식이 이처럼 다르니, 피해국들의 반성 요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가 막혔다. 침략전쟁의 최후 발악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고? 그런데 그들의 '대동아 역사 인식'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보자면 그럴듯하다.

이미 패배가 명확함에도 젊은이들을 자살 특공대로 출격시킨 일본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이 나라를 통째로 바친 조선 역시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후대인 우리 역시 광복절을 기념할 뿐 국치일(8월 29일)에 주목하지 않는다. 반성해야 할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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