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당당한 발해

"선생님, 당발해가 뭐예요? 그런 나라도 있었어요?" "그래, 나도 당발해 때문에 무척 당황스러워. 발해도 있고 당나라도 있었지만 당발해는 금시초문이네. 중국 사람들 참 이름도 잘 짓는다, 그치?" 발해의 수도가 있었던 동경성 박물관의 발해 기와나 토기 앞에는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부라는 뜻으로 당발해 이름표가 빼곡히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400년 동안이나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의 박물관에는 아예 입구 전면에 '고구려는 중국에 속한 변방 국가'임을 알리는 문구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고, 산해관으로 동쪽 만리장성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옛 지도는, 단동을 지나 목단강까지 길게 늘어져, 심지어 평양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는 동북공정의 단면을 태연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소름이 쫙 끼쳐온다.

와 무섭다. 중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해 온 건, 남북이 통일이라도 할라치면 영토 확장의 명분을 확실히 하여, 백만 명 정도 인해전술로 북한에 쫙 깔아놓으면 중국 땅 될 수 있을 거라는 심사가 아니고 뭘까? 원래 중국 땅이었는데 이제 다시 차지하겠다고 생떼를 써도 우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박물관 들랑거리는 걸 본 적이 없는 터라 중국 박물관을 들를 때마다 청소년, 어른들로 북적거리는 풍경은 참으로 신기하고 부러웠다. 훈련된 어린이들의 간드러진 해설은 어딜 가나 볼 수 있고, 또한 열심히 적고 있는 아이들의 열성은 어떠하며, 그렇게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는 중국에 속한 나라였다고 오늘도 열심히 새기고 있으리라,

역사는 진실에 입각해 복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도무지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확인된 홍산 문명을 보러 갔을 때, 북방민족의 적석총 무덤양식이나 둥근 제단의 형태를 통해 이건 한족 문명이 아니라 북방민족, 그러니까 동이족 문화가 아닐까, 나 같은 생짜배기조차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멀리까지 나랏돈 써서 오신 역사학자 양반들은 단군조선조차도 실체를 인정하기 어려우시니 그냥 쩝쩝거리며 고개만 갸우뚱거리다 가셨다나.

발해의 궁궐터는 그 규모나 구조상 경복궁의 스케일을 훨씬 압도한다. 절대로 중국에 꿀리지 않겠다는 당당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배어 있고, 의도적으로 거의 발굴하지 않은 방치 상태로 둔 벌판의 허허함이 오히려 발해의 긍지를 상상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기념으로 뭐 하나 가져갈 게 없을까 열심히 땅을 뒤적거리다 용케도 하나 찾았다. '작은 기와 조각'. 발해의 기와는 기와 끝 부분을 손으로 꾹꾹 눌러 놓은 특색이 있는데 그걸 발견하고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기와 조각 하나 가져온다고 공항에서 신경이나 쓸까마는 마치 문익점이 목화씨 밀수하듯 지레 가슴 쓸어내리며 몰래 가져온 보물 같은 발해 조상님의 작품은 지금 책상 위에 고이 올려져 있다. 아마 당분간은 매일 감상하며 발해를 꿈꾸게 되겠지. 근데 서태지는 발해유적지를 다녀와서 '발해를 꿈꾸며'를 불렀을까? 발해는 참으로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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