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도청 이전은 행복한 이벤트?

집을 옮기는 행위, 즉 이사(移徙)를 하면 즐거워야 할까? 아니면 고통스러워야 할까?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지만, 좋은 곳으로 이사하면 당연히 즐거울 것이고, 현재보다 좋지 못한 곳으로 이사하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전'월세가 아닌, 처음으로 우리 집을 구해 이사하면서 그렇게 행복해 하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예나 지금이나, 이사는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혹은 그 집단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짓는 중대한 행위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이사의 역사'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원시시대에는 수렵이나 채집에 용이한 곳,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고대에는 농사짓기 적합한 곳, 인심이 넉넉한 곳으로 옮겨다녔다. 정권을 잡아 수도를 옮기거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 상경하는 것도 이사의 또 다른 형태다. 요즘에도 좀 더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기 위해 몇차례 이삿짐을 꾸린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사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경북도청이 안동'예천으로 옮겨가는 일은 분명히 경사스러운 일이다. 일각에서는 '대구경북이 단합해도 모자랄 판에…' '청와대보다 더 웅장한 청사' '쓸데없는 예산 낭비'라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이왕 옮겨갈 바에는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향후 1천 년을 자리매김할 최고의 신도시를 만들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겠는가. 먼 훗날 신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도청 이전 시기를 놓고 내부 구성원 간의 갈등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도의회는 10월, 도청은 11월로 예정하고 있는데 직원들은 내년 2월이 적당하다고 한다. 직원들은 아파트, 유치원'학교 등 기반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옮길 경우 대구에서 출퇴근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출퇴근을 위해 왕복 4시간을 길에서 허비할 수밖에 없다는 직원들의 항변은 아주 타당해 보인다.

김관용 도지사나 장대진 도의회 의장의 생각은 직원들과는 아주 다른 듯하다. 신청사가 지어진 상태에서 하루라도 빨리 옮겨가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보는 것 같다.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직원들의 미적거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빠른 이전이 옳다는 것이다. 도청'도의회 수장의 생각은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엿보이는 부분이고, 직원들의 주장은 생활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논리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도청을 10월에 옮겨야 하는지. 내년 2월에 옮겨야 하는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청 이전이 축제의 장이 되고 즐거운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데,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도청'도의회 수장이 앞세우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생활'근무 여건이다. 고작 몇 달의 차이 때문에 행정을 뒷받침하고 실무를 맡은 1천200여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임이 틀림없다. 직원들은 윗분들의 방침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고 하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결정적인 흠이 있는데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다. 솔직히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은 도청이 대구에 있든, 안동에 있든 아무런 불편도 없는 분들이 아닌가.

즐겁고 행복해야 할 이벤트가 원망과 불신으로 가득한 장으로 변질됐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이사할 때 반드시 길일(吉日)을 택해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이제 경북도가 내부 구성원들과의 합의를 통해 제대로 된 '길일'을 잡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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