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적 우리 집 문지기는 복실이였다. 우둘투둘 엮어놓은 돌담길 옆에 늙은 감나무가 버티고 서 있고 그 그늘 아래 조그마한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매일 우리를 지키던 강아지다. 가끔 목줄에 매여 있기도 하고, 때로는 풀어놓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한식구처럼 지냈다. 그는 우리가 먹다 남은 밥을 먹었으며 마당 귀퉁이 골목이었지만 한 집 안에서 살았으니 식구와 다름없었다. 나는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으며 그도 유독 나를 따랐다.
복실이는 영특했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겨울 아침, 늦잠에서 깨어나면 복실이는 벗어놓은 뜨락의 내 신발 위에서 곤히 잠자고 있었다. 뿌린 눈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신발은 젖어 있었지만 내 신발은 한겨울에도 따뜻했다. 어쩌다 많은 식구들의 신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도 내 신발만은 두 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언제나 복실이가 물어다 정리해 두기 때문이었다. 또 학교 갔다 돌아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동네 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신발주머니나 도시락통을 목에 걸어주면 끄덕끄덕거리며 나를 앞질러 갔다. 친구가 많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복실이와 놀기도 하면서 친하게 잘 지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다 말고 깜짝 놀랐다. 내용은 어느 강아지가 차도를 한참이나 가다가 뒤따르던 차에 치였으며 그 강아지 주인이 다친 강아지 치료비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반려견이었다. 법을 잘 모르는 내 상식으로는 오히려 강아지 주인이 운전자에게 사죄하고 놀란 운전자를 병원으로 모셔가야 되었다. 분명히 그 운전자는 한동안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벌렁거렸을 것이다. 반려견은 어디까지나 강아지이다. 사람과 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우선인지 개가 우선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행사를 마치고 늦은 밤 귀갓길에 엘리베이터를 막 타려는 순간, 안에서 머리를 산발한 채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앙칼지게 깨갱거리며 뛰어나왔다.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한참이나 쪼그리고 앉아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서야 집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뉴스에서처럼 그 강아지가 반려견이라면 나는 그 견(犬)님이 무사한지 안부라도 뒤늦게 여쭤봐야 하나? 내 비명 때문에 그 어린 구(狗)님이 놀라지나 않았는지 진료비라도 대 줘야 하나? 비약적이긴 하지만 만약 개에게 물렸다면 그 개의 이빨 치료비를 대 줘야 하나?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강아지 털이 묻어 있을 것 같아 손잡이를 잡지 않고 비 오는 날이면 자꾸만 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코를 막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지린내의 주범이 그 강아지일 것만 같다. 그뿐만 아니라 내 기억 속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복실이에 대한 추억을 싹 지워 버렸다. 분명 동물과 사람은 구별되어야 한다. 부디 아무리 애완견이 예쁘더라도 사람이 우선인 세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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