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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의 시와함께] 여름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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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1942~ )

만날 사람도 없이 긴 나무의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불콰하다.

닫힌 얼음집 앞에 빚더미처럼

여름이 엎질러져 있다.

문 안에서 누가 톱질을 하는지

새벽에서 밤까지

슬픔들이 토막으로 잘려나오는 소리.

질이 연한 내 마음이 아프다.

쭈쭈바를 입에 문 아이가

기웃거리다 지나가는 쪽

속이 편안한지, 덜컹거리며 가야 할 길 버리고

시동 걸린 화물트럭이 빈 채로 대기 중이다.

큰길 옆 버즘나무 그늘 밑

사람들이 얼굴을 펴면 뜨내기 꽃들의 얼굴에도

햇볕이 환하게 빛났다.

몰래 내다 버린 화분 속에

관절을 앓는 남천이, 은침을 박고 있는

어깨와

겨드랑이에

여름이 환하게 지는 중이다.

(전문.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창비. 1998)

여름이 가고 있다. 부풀어 오르던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사람들은 다시 아픔에 가까워진다. 온갖 흥겨움과 서늘한 그늘의 위로도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뒤에는 엎질러진 슬픔으로 얼룩져 있다. 기억은 토막 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현재를 싣고 가야 할 우리의 시간은 빈 채로 대기 중이다. 여름이 가고 있다. 또 하나의 여름이 가고 있다. 환한 플라타너스가 의미 없는 이정표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다. 무엇이 지나갔던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누워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이제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그 시간을 몰래 내다 버리리라. 그러나 여름이 환하게 지는 중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노을과 백일홍의 저녁이 붉게 지는 중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보내고 싶지도, 붙들고 싶지도 않은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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