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격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격언은 인간을 그저 잠시 고무시켰다 시들하게 만드는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시시한 격언들 사이에서도 가끔씩 내 마음에 쏙 드는 근사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격언이다. "인간은 위대한 것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집에 돌아와서 발견한다."
저 짧은 문장이 내게 최고의 격언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에게 무언가를 단선적으로 추구하도록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벌레를 잡아라!" 혹은 "99%의 노력으로 천재가 되어라!" 같은 격언은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콱콱 막히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벌레를 잘 잡는 새'나 '에디슨 같은 천재'가 되기 어렵다는 점도 반감을 불러온다.
반면 내가 꼽은 저 격언은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강요하고 있지 않다. 대신 겉보기에 실패로 보이는 우리 대다수의 인생이 사실은 아주 작은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위안만을 줄 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한국에서 불가사의한 인기를 누렸다. 이 영화의 성적은 한국에서 개봉한 모든 외화 중에서도 역대급이었지만, 다른 국가에서의 흥행 성적과 한국 내의 그것을 비교해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왜 하필 한국에서만?'이라는 질문이 또 화제가 됐다.
혹자는 한국의 비정상적인 교육열과 연관이 있다 했고, 어떤 언론은 한국인의 지적 허영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정답이 하나일 리는 없으니 다 조금씩 맞는 말일 테다. 한 번 대세 영화가 되면 무조건 봐야 직성이 풀리는 벌떼 근성이 그 현상의 기본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또 한 가지 가설을 덧붙이고 싶다.(스포일러 주의) 극 중 쿠퍼라는 우주비행사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20년 뒤의 미래로 가버리게 된다. 지구에 남은 열 살배기 딸이 불과 2시간 만에 30대가 되어 버리는 것. 쿠퍼는 제발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외치는 딸의 영상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 장면이 한국 흥행의 핵심이라고 보고 싶다. '저녁도 없는 삶'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저 장면은 SF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이든 자영업이든 그것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수십 년을 워프해 버린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면, 갓난아기는 처녀가 되어 있고, '딸바보'였던 아빠는 무뚝뚝한 가장이 되어 있다.
우리는 전 인류를 구해야 할 임무도 없었고, 딱히 위대한 것을 이루어 낸 것 같지도 않은데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속의 쿠퍼처럼 우리도 과거의 자신에게 외치고 싶어진다.
"떠나지 마! 이 자식아! 가족과 함께 있어!"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원래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위대한 것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는 법이라지 않나. 그러니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제 집에 돌아가 '위대한 것'을 진정으로 발견해 내는 일일 테다.
당신이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내줄 수 없어도 좋다. 무슨 '월드 럭셔리 팰리스' 따위의 성냥갑 안에 살지 않아도 좋다. 안중근, 윤봉길 의사처럼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지 않았어도 전혀 상관없다. 당신에게 지금 가족이 있고 그들을 만나러 갈 여비 정도만 있다면, 당신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위대한 것은 애초에 그러니까, 웜 홀 속에 있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언제라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의외로 따뜻한 천국인 셈이다.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차문 닫다 운전석 총기 격발 정황"... 해병대 사망 사고 원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