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벨기에의 운하도시 부루게

400년간 시간 멈춘 듯 골목 사이 낭만 흐른다

부루게 중앙광장
부루게 중앙광장
운하에서 바라보는 시내 건물
운하에서 바라보는 시내 건물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운하의 도시라고 한다. 유럽을 좀 다녀 본 사람은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도 운하의 도시인 줄 안다. 그러나 여행에 엔간한 내공이 있기 전까지는 벨기에의 부루게(Brugge, 영어로 Bruges)는 잘 모른다. 부루게는 운하로 된 아름다운 작은 도시이다. 그래서 나는 페테르부르크를 북부 유럽의 베니스, 부루게를 중부 유럽의 베니스라고 부른다. 운하가 도시를 휘돌아 간다. 바다로 연결된 운하는 이 도시의 매력이다.

사실 부루게의 매력은 운하뿐만이 아니다. 도시 골목골목에 있는 나지막한 집들이 더 큰 매력이다, 원래 부루게는 14세기만 해도 유럽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발틱해에서 나는 호박(琥珀)을 지중해를 통해 중동, 인도 심지어는 중국까지도 수출하기 위한 호박 루트의 항구로 유명했다. 유럽 북부 무역의 주역이던 한자리그와 유럽 남방 무역 루트의 교차점이기도 했다.

당시 부루게는 유럽 최고의 무역항구로서 번성했었다. 1309년 세계 최초로 증권시장이 열릴 정도였다. 그러다가 1500년을 기점으로 부루게의 항구 앞 만이 바다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하고 결국 내륙이 되면서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겨우 보트 두세 대가 비켜 지나갈 정도의 운하가 바다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인근의 안트워프 항구에 밀리고부터는 15세기에 20만 명의 인구를 가졌던 대도시가 1900년에는 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세상 일은 참 묘하다.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큰 득이 되는 일도 일어난다. 그래서 세상에는 새옹지마니 전화위복이니 하는 말이 있는가 보다. 이는 우리가 지금 돌아보고자 하는 부루게를 두고 하는 말이다. 1500년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시는 개발이 되지 않았다. 18, 19세기의 산업혁명 바람과 함께 불어닥친 대도시화도 부루게를 비켜갔다. 그 결과 부루게는 거의 19세기 후반부터 불기 시작하는 관광붐이 일기 전까지 마녀의 저주를 받은 도시처럼 거의 400년간을 소위 말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덕분에 현재 부루게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한 부루게 성 안 마을은 400년 전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었다. 190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철도와 자동차의 발달로 유럽인들이 관광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루게는 다시 붐 타운이 되기 시작했다. 400년간의 쇠퇴가 어설픈 개발을 막았고 덕분에 부루게는 지금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관광객들이 1년에 200만 명씩 들어와 여름이면 정말 좁은 골목이 더 좁아터질 정도인데 대부분이 다른 유럽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부루게를 보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마차를 타고 30분간 골목골목을 천천히 편안하게 그러나 가장 빨리 돌아본다. 마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일단 본다. 그러고 나서는 운하를 다니는 유람선을 타고 다시 30분을 돈다. 동네 골목을 옆에 두고 50개의 다리 밑을 달리는 기분은 대단하다. 이렇게 하면 마차나 자동차로는 못 보는 부루게의 뒤태를 볼 수 있다. 그다음이 천천히 부루게를 직접 발로 도는 방법이다.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선, 부루게 전성기에 지어진 멋진 나지막한 집들을 돌아보다 보면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안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렇게 장난감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돌다가 다리가 아프면 골목 여기저기의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과 혹은 생크림이 듬뿍 올라 있는, 보기에도 먹음직한 벨기에 와플로 배를 채워도 좋다. 그것으로도 배가 안 차면 제대로 된 레스토랑을 찾아가 벨기에 특산의 홍합탕과 감자튀김 세트를 먹으면 된다. 이때 중심가에 있는 시장광장(Grote Markt) 옆에 있는 식당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권한다. 발품을 조금만 팔아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값도 저렴하면서 훨씬 분위기 있고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이다. 물론 이때는 유명한 벨기에 맥주도 곁들여보자. 벨기에는 작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약 1천200종의 맥주가 생산된다. 특별한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파우벨 크왁'(Pauwel Kwak) 맥주를 시켜 보라. 화학실험용 플라스크 비슷한 잔이 나무받침에 걸려서 나온다. 에일(Ale) 맥주라서 독하긴 하지만 별미다.

이제 배를 채웠으면 제대로 된 관광객답게 시내 명승지를 몇 군데 다녀 봐야 한다. 우선 시장 광장에 교회처럼 서 있는 48개의 종이 달린 종탑부터 올라가 아래에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이 최우선이다. 그다음으로 종탑 뒷길에 있는 성모성당(Onze Lieve Vrouwekerk)을 가 보아야 한다. 벽돌 첨탑의 높이가 122.3m로 이런 종류로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 그 안에 있는 렘브란트와 함께 유럽 최고의 인물화가 반 다이크의 '십자가 위의 예수 고상' 유화와, 미켈란젤로 생전에 이탈리아를 떠난 유일한 성모자 조각상을 보아야 한다. 이 조각상을 탈취해 간 나치 독일이 패망을 앞두고 이를 파괴하려 하자, 이 음모를 막고 다시 찾아오는 미국 군인들의 비화를 다룬 '모뉴먼트 맨'(2013년 작, 조지 클루니 감독 주연, 맷 데이먼'빌 머레이 출연)으로 유명해져 성당 내 전시장에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부루게의 미로 같은 작은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길을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길은 시장광장으로 통하고 안 되면 고개를 들기만 하면 시장광장의 종탑이나 성모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때문이다.

johankwon@gmail.com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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