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실에서-가정·여성] 무시하고 때리고…한평생 참아왔지만

저는 60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외로움에 빠졌을 때, 현재의 남편이랑 중매로 만나서 혼전 임신으로 결혼했고 3남매 낳아 다 독립시켰습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박력 있고 활발하며 말솜씨가 좋았고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일찍 부모를 여의어 사랑을 못 받고 자랐습니다. 남편은 5형제 막내였으나 위로 형들이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천방지축 살아오다 저와 결혼했습니다.

사실 혼전에도 저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나 그것도 박력으로 보였습니다. 그 당시 주위 가족들이 남편의 폭력과 여성 편력을 언급하며, '사귄 여자가 한 트럭은 될 거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으나, 저도 첫사랑의 경험이 있었기에 죗값이라 생각하고 무시했습니다.

결혼 초에는 제가 처녀가 아니라며 술만 먹으면 폭언'폭력이 있었고,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습니다. 때로는 외간 여자를 집에까지 데려오며 술상을 차리도록 강요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은 죄가 있어서 평생 기죽어 시키는 대로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남편과의 잠자리는 일방적이며, 임신 중에도 남편은 성생활이 재미없다며 유산하라고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유없이 이혼하자고 때렸기도 했습니다. 맞고 산다는 소문 때문에 창피했지만 딸이 걱정되어 평생 노점상을 하면서도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딸도 아버지와 한편이 되어 저를 무시합니다. 이제 이혼이 겁나지 않습니다만 일평생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이혼은 싫고 남편이 불쌍해서 돌봐주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바라는 것은 남편이 저한테 화만 안 내고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자식들도 저를 무시하지 않고 저의 하소연을 받아주는 대화 상대만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제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너무 외롭고 허무합니다. 100세 시대라는데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도와주세요!

귀하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외로움을 달래고자 성급하게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일평생 순결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억압하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에게는 죄인처럼 위축된 모습으로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 내내 기죽고 살아왔으니, 기나긴 세월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귀하의 속마음을 모르는(?) 남편은 당당하게 외간 여자를 만나며 다녔고, 때로는 집에까지 데려와 손님 대접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하니 말 못하고 속 타는 그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귀하의 남편은 결혼 전부터 여성 편력이 있었고, 통제 없는 삶을 살았으며 남성다움을 과시하며 가정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특히 신체폭력뿐 아니라 일방적인 부부 성생활도 성폭력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결혼 후 남편의 박력이 폭력으로 변하고, 기대했던 사랑이 무시와 모욕으로 변했음에도 귀하는 자식을 위한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가정을 지키며 지금까지 버텨냈습니다. 다행히 귀하의 신앙심이 자신의 존재감을 일깨우며 현실을 살아가도록 도왔고 정신적 지주로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귀하는 물론 남편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온전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애정 결핍의 상태로 성장하여 따뜻한 가정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인격적 대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귀하는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가정을 유지하고 자녀들을 성장시켜 독립시키며 자신을 지금까지 잘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구축하여 활기차게 나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귀하는 다음의 몇 가지를 명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현재의 나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주고 인정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과거의 나는 흘러간 강물과 같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시대 자신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그 순간의 선택은 나의 최선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 불문하고 남편의 폭력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참는 대신 단호하게 대응(112신고 등)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부부폭력도 범죄행위임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셋째, 앞으로 나의 삶의 운전석에는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남편이나 자식이 나를 배려하는 것을 기대하지 말자는 것, 즉 상대에게 의존하는 대신 나를 위하여 하루하루 무엇을 하며 보낼지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신앙생활과 취미생활 등 무엇이든 진정 내가 행복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넷째,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존감을 향상하고 가족(남편 혹은 딸)을 상담실로 안내하도록 합니다. 100세 시대에 스스로 새로운 삶을 위하여 첫걸음을 내디뎠으니, 더욱 용기를 갖고 자신을 위해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가 오랫동안 존속되어 왔습니다. 혼전 순결 가치관에 억눌려 여성들의 성이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에는 남성 위주의 성이 지배적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 많은 여성이 혼전 순결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혼전 순결 운운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며, 과거와는 전혀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결의 의미는 아니겠지만 현재에도 일부일처제에 대한 건전한 결혼생활을 위한 성적 절제는 필요하며, 서로에 대한 인격의 존중과 사랑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사례자의 경우 과거 혼전 순결에 대한 가치관으로 인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무절제하고 통제적인 남편에게 종속되어 비참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지금 사례자는 일생 동안 참아왔던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먼저, 시대적 상황과 본인의 가치관에 얽매인 과거의 삶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함께 나누며, 현재의 용기를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둘째, 남편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부당하며 범죄임을 인식시키고, '커밍아웃'하도록 돕습니다. 셋째,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찾도록 도우며, 하루하루 일상에서 새롭게 실천하도록 합니다. 넷째, 본인의 자존감을 향상하고 가족(남편 혹은 딸)을 전문가에게 안내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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