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렸을 적 고향 마을에는 한두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러한 추억과 기억이 있다. 심지어 돌담 주변으로 감나무를 심어 집들 간의 경계를 운치 있게 만들기도 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길목에는 앙상한 감나무 꼭대기에 서너 개 남은 홍시가 발그랗게 달려 있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동네 형들이 몰래 따먹는 옆에서 홍시를 얻어먹은 적이 있다. 요즘은 감을 설익었을 때 따서 화학약품으로 인위적으로 익힌 홍시를 먹는다. 하지만 그때 몇 개 남지 않은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익은 홍시는 얼마나 맛있고 달던지…. 행복이 가슴 깊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감 주인과 동네 어른들은 남겨 놓은 감을 절대 따먹지 못하게 했다. 한밤중에 몇몇 친구들과 놀다가 몰래 긴 장대를 갖고 따려 했지만, 워낙 높이 달려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감 수확 이후에 늙은 먹감나무 꼭대기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감을 '까치밥'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정말 까치만 와서 쪼아 먹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여러 새들이 와서 먹고, 심지어 허기긴 사람들의 몫이 되기도 하였다.
시인 김남주는 까치밥에 대하여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라고 노래했다. 우리 민족은 까치밥뿐만이 아니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얼마만큼의 이삭을 남겨 두었다.
우리는 나눔과 섬김이라고 하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세계적인 부자들의 일이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해당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 때가 많다. 어쩌면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불경기로 너나 할 것 없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까치밥'의 정신이 참 좋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까치밥은 단순히 먹는 것이나 물질만이 절대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까치밥, 작은 선물 하나, 배려 하나가 이 시대 우리의 까치밥이 될 수 있다.
최근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청년에게 성숙 훈련을 하면서 한 주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이나 격려의 말, 섬김을 매일 한 가지 이상 실천하고 보고서를 내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아름다운 한 주였다. 젊은 청년들은 참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까치밥을 통해서 아름다운 나눔과 섬김의 사연을 가지고 왔다. 더 중요한 사실은 까치밥을 남기고 전한 자신들이 그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지금으로부터 110여 년 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위해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4만5천달러(현재가치 약 7천억원)를 기부한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선생은 병원 건립비를 세우는 날에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드리는 저의 기쁨이 더 큽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까치밥 수준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 정신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남에게 대가 없이 나누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는 것을 부족한 이들과 나누게 되면 오히려 나누어 준 사람이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테레사와 슈바이처 효과'라고 한다. 까치밥을 남길 줄 아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분명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부족해도 나눌 것이 있다.
바람이 조금씩 추워지는 계절이 왔다. 올해부터라도 나의 인생 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보자. '내가 남길 까치밥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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