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햄과 소시지를 발암물질로 규정하면서 전 세계에서 난리가 났다. 이번 WHO의 발표는 햄과 소시지뿐만 아니라 붉은색 고기(소, 돼지 등)까지 발암물질로 규정되면서 "아예 고기를 끊으라는 거냐"는 사람들의 반응에 WHO가 다시 해명을 해야 했을 정도로 그 여파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이 후폭풍에 대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궁금했던 점들을 정리해봤다.
1.-WHO가 햄과 소시지를 발암물질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햄과 소시지 등의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곳은 WHO 산하 국제 암 연구소(IARC)다. IARC는 학술지 등에 보고된 연구결과를 검토'분석해 사람에게 암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나 습관, 물질 등 학술적인 증거가 충분한지를 보고 발암 요인을 분류하는 기관이다. 이번 발표 또한 가공육에 대해 지금까지 이뤄졌던 800여 건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라는 게 IARC의 입장이다.
2.-어떤 햄과 소시지가 발암물질의 대상이 됐나?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햄과 소시지는 IARC가 조사한 가공육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가공육의 정의 자체가 "도축한 고기를 양념, 염지, 가열, 훈연, 건조, 분쇄 등의 방법으로 처리해 만든 고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가공육을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햄류, 소시지류, 베이컨류, 건조저장육류, 양념육류, 그 밖에 식육을 원료로 하여 가공한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고기 함량 90% 이상의 '스팸'부터 고기 함량이 50% 이하인 '계란물을 입혀 부쳐 먹는 소시지'까지 모두 가공육으로 분류된다고 보는 게 이해하기 쉽겠다.
3.-간혹 이상한 고기를 쓴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햄과 소시지는 안전하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우리나라 가공육의 제조와 판매는 해썹(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처럼 정부의 기준에 따른 관리감독을 받게 돼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가공육은 믿고 먹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소시지에서 인간 DNA가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다 보니 제조과정 중의 위생 상태는 약간의 의심을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4.-햄과 소시지를 만들 때 처음부터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만들 수는 없는가?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게 아닌 다음에야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소금과 같은 천연첨가물이든,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화학첨가물이든 육류의 보존과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햄에 아질산나트륨이 빠진다면 보존기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아질 가능성이 크다. 회사 입장에서는 안 쓰기가 쉽지 않은 물질이다. 차라리 적게 들어간 가공육을 고르거나 조리하기 전에 제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좀 더 현명한 섭취 방법일 수 있다.
5.-햄과 소시지를 고를 때 가장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이 '제품함량표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깨알같이 적혀 있긴 하지만, 육류 함량이 제대로 표시돼 있고 발색제인 '아질산나트륨'이나 각종 보존제 등이 없거나 적게 포함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6.-햄과 소시지에 들어 있는 첨가물들을 조금이라도 제거하고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IARC는 "육류나 가공육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는 조리법이 발암 위험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삼겹살을 석쇠나 팬에 구워먹는 것보다 수육으로 먹는 게 암을 유발할 위험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또 햄, 소시지 등의 가공육은 끓는 물에 2, 3분 정도 데쳐서 먹거나 키친타월 등으로 기름기를 제거한 뒤 먹는 것이 좋다. 첨가물들 대부분은 데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나오며, 발색제 등은 대부분 지용성이라 기름을 어느 정도 빼고 나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7.-햄과 소시지를 먹으면 정말 벤젠과 같은 다른 발암물질들처럼 암에 걸린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다'. IARC가 정의한 발암물질 1군의 의미는 "특정인자가 인체의 발암원으로서의 학술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당신이 걸린 대장암의 원인이 하루에 3인분씩 먹어댄 삼겹살이라고 진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말이다. IARC가 정의한 발암물질 1군에는 다이옥신, 비소, 카드뮴 이외에도 술, 오염된 공기, 심지어 햇빛도 들어가 있다. 햇빛이 1군 발암물질이라고 해서 햇빛을 쬐면 모두 피부암에 걸리는 게 아니듯, 가공육이 1군 발암물질이라고 해서 햄을 먹으면 무조건 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8.-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양은 암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사실인가?
▶2010~2013년 조사된 국민영양건강조사에서 한국인의 평균 가공육 섭취량은 6g이었다. IARC는 "매일 50g의 가공육을 섭취하면 대장'직장암 발생률이 18%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하루 50g이라 함은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얇은 햄 2장, 도시락에 자주 들어가는 비엔나소시지 6개 정도의 양이다. 매일 햄 샌드위치를 먹거나 반찬으로 비엔나소시지가 올라오는 가정이 아닌 다음에야 평범한 가정에서 먹는 가공육의 양으로는 암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9.-영양학적으로 햄과 소시지는 좋은 음식인가?
▶가공육은 현대인에게 좋은 단백질 공급원인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햄과 소시지는 가공과정을 거치면서 세균번식, 부패 등에 비교적 안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저장성 또한 훌륭하다. 예전보다 우리가 고기류를 더 많이 먹게 된 것도 햄과 소시지의 뛰어난 저장성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제조과정 중에 포화지방이 다량 들어가고, 염분과 식품첨가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 좋다고 말하기는 사실 어렵다.
10.-우리는 햄과 소시지를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다시 한 번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햄과 소시지의 향미와 감칠맛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면 매일 50g씩 먹는 식의 과다한 섭취만 아니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러니 평소처럼 먹되, 가공육으로 인한 암 발병이 염려되면서도 그 맛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굽거나 삶거나 살짝 데쳐 첨가물들을 빼낸 뒤 요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도움말 윤창호 경북대 가정의학과 교수, 김아솔 경북대 가정의학과 교수, 김은정 대구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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