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쎄라비(C'est La Vie)-이것이 인생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일상이 흘러갔다. 그러나 내 마음의 시간은 흐름이 멈추어버린 듯한 고통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는 그 사람 생각으로 진종일 집안을 서성거리거나 애면글면 몸부림이 서러우면 침실로 들어가서 지칠 때까지 몇 번이고 이리저리 딩굴었다. 이성으로서의 교류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내려앉고 터져버릴 듯 아팠으며 꿈에서라도 다시 한 번 그를 보고 싶었다. 내 속에 그토록 엄청난 잉걸불이 있었을 줄 짐작이나 한 일이던가. 무엇 한 가지도 그 스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고 그 스님 외엔 모든 것이 다 무의미했다.
착각 때문에 자신의 입지를 파악하지 못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불행한 일이고 추한 일이기도 하다. 온갖 이성적인 판단이나 생각을 하면서도 몸부림이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어느 날 마침내 스님이 있는 도량을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도 정작 현장에 도착했을 땐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커녕, 차마 주지 스님을 뵙고 싶단 말조차도 엄두를 내어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냥 하염없이 건물만 쳐다보고, 주차장에 세워 둔 그의 자동차 본닛이라도 쓰다듬어 보고 올 수 있었던 일만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곳 도량의 주지 소임을 맡았다는 소식은 스님이 대학원에 진학한 2012년 3월 초순경이든가, 통화 중에 우연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 집에서 기차로 불과 2시간 미만대인 거리인 데다 현지 시내에서도 접근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한 도량이라 초행이라도 찾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스님이 생활하는 도량을 바라보기라도 하고 온 날은 그런대로 좋았다. 언제나 아쉬움이 따랐지만 괜찮아, 괜찮아, 다시 가서 또 보고 오면 돼. 미흡한대로 그렇게 위로하고 달래면서 참고 견뎠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나른한 5월 초순 어느 봄날 오후, 먼 산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뻐꾹, 뻐꾹…" 그 봄 들어 처음 듣는 청량한 소리였다. 얼른 일어나서 창을 한 것 열어 젖혔다. 프레임이 큰 창이라 열린 문 밖으로는 언제라도 저만치 동구 밖 송림을 한 눈에 조망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무심한 눈에 까만색 승용차 한 대가 그곳에 주차해 있는 것이 들어왔다. 혹시, 하는 순간 찌르르 전율이 전신을 강타했다.
뜬금없이 그 차가 왜 스님 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랬고, 앞뒤 가릴 것 없이 신발도 채 바로 신지 못 하고 서둘러 달음박질쳐 나갔다. 그것은 희망이었을지언정, 확신 없는 돌발행동이었는데 이성적으로 앞뒤를 따질만한 겨를이 그 순간엔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미처 솔밭까지 당도하기도 전에 아쉽게도 차는 이미 스르르르 그 곳을 돌아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직감대로 그것은 스님의 차였다. 거짓말 같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망부석 같이 우두커니 서서 달아나는 차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섰으려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 가슴에도 어떤 형태로든 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정녕 그랬으면 하고 바랐다. 설령 그것이 염려라도 좋고, 어려운 중생을 위한 자비심이라도 좋고, 볕뉘만한 것일지언정 관심이라면 얼마나 더 좋을까. 난 아전인수 격으로 내 마음에 맞는 상상만을 골라하면서 맥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스님의 생활공간인 건물이나마 바라보고 그리움을 달래면서 돌아온 것처럼 어쨌거나 그도 자기 방식대로 나 있는 곳을 잠시 다녀간 것이란 생각은 고무적이었다. 어둠이 가득한 동굴 속으로 한 가닥 빛줄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자신으로 인해 한 중생이 집착을 놓지 못하고 마음고생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 스님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됨직한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당도하고 보니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님의 한량없는 자애를 순수한 자애로 수용하지 못하는 내가 적잖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속이 자글자글 끓었다. 그게 아니라 혹시 산중 토굴로 들어가는 시기가 앞당겨져서 떠나기 전에 미리 일러 둘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미구엔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염려하고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었던 무엇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오만가지 상념이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몰고 거대한 파도가 되어 넘어왔다.
무릇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그것다워야 아름다운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꽃이 꽃답고, 사람이 사람답고 성직자가 성직자다울 때 우리는 그 모두를 보고 아름답다 여긴다. 자연처럼 순수하면서 인자한 기품과 맑고 어진 영혼에다 고향 같은 인간미까지, 수행자로서의 면면이 아름다운 한 사람이 시골 고샅길의 어둠을 물리는 등롱같이, 서쪽하늘에 영롱한 새벽별 같이, 깊은 밤 은은하게
내려오는 달빛 같이 그렇게 존재했다.
원래 형상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는 것은 이치상 당연하다. 기쁨과 슬픔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문제 아니던가. 자신의 행태 역시 따지다 보니 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유아 단계의 의식 수준인데 기껏해야 유모차나 탈 살 수 있는 주제임을 모르고, 링컨 컨티넨탈이나 바이마흐(벤츠) 같은 최고급 세단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린 격이었으니 여간만 착각인가 말이다. 지극히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라고 자성한 순간, 속에서 대번에 와르르 와우아파
트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내심, 자기 단속이나 인간적 도리에 대한 파악만은 제대로 하고 산다는데 촌분의 의구심도 없었던 만큼, 나도 그냥 일개 중생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자기 확인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11. 그리움, 아 그리움
산골짜기 오두막 굴뚝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 군불 연기에도 그리움이 만발하고 노을 지는 황혼의 어스름이나, 궂은비 오시는 날 똑, 똑,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에도, 오련하게 어둠을 물리는 집 앞 가로등의 외로운 그림자까지, 그리움을 부추기는 온갖 무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에워쌌다. 어쩌다 역전 근처를 지나가면서 흘깃 건너다 본 역사 안으로 긴 철로와, 플랫폼의 벤치, 혹은 때마침 당도한 기차의 기다란 차량을 보았을 때도, 어김없이 그런 충동이 일어났다. 저 기차를 타기만 하면 그에게로 갈 수 있는데…
아, 그 사람 한테로 가고 싶다. 하는 절절한 사무침…
도발하는 그리움과 염원이 내 안을 꽉 채우고 있는 상태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을 두고 무시로 일어나는 집요한 망상은 스러지는 법도 없었다.
고장 난 시계처럼 내 마음도 딱, 멈추고 썰물이 빠져나가듯 그리움도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리석고 부질없는 내 한 생도 한바탕 꿈같이 끝나는 건데, 사랑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것에 휘둘리며 고통을 받는 일도 결국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나 다름 아니었다. 대저 세상에 있는 것치고 값이 없는 것이 무엇인들 하나나 있을 것이던가. 따져보면 뭐 그리 억울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무모하고도 뻔뻔하게 수행자를 오도(悟道)하려 했다는 자각을 하게 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만 파계하고 한 이불을 덮고 살자 졸라볼까 하는 맘과, 그래선 절대 안 된다는 자아가 이성적 사고로서 맞대결을 벌이면 번번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둥그러지는 쪽은 욕망이었지만 그 집요한 갈망과 자의식의 맞대결은 이종격투기 만큼이나 거칠고 치열했다. 그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있을 리 만무한 오직 한 사람, 스님을 향한 사랑의 집념이자 여망이었다.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나무숲을 희롱하고, 마악 비행을 끝낸 한 마리의 학이 푸른 솔가지에 우아하게 착륙하듯 내 사랑도 그리 무난하게 안착할 수 있길 바랐건만 끊임없이 흐르는 시냇물 같은 사랑과 신뢰가 내 안에 우뚝한 산과 같다 해도 자기 길에 대한 일념으로 확신에 차 있는 스님에겐 가련한 일개 중생의 중생놀음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이젠 더 이상 이 미친 짓을 끝내야겠다는 것으로 마음이 모아졌다. 그날 저녁 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수신인은 스님이었다.
Dear J.M 스님 !
서로에게 허물이 없으면서도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관계일 수 있다면 하고 바랐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전혀 별개의 존재인 듯하면서도, 절대 별개로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보니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까. 늘 한결같은 사람이려는 지향이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만 뒤돌아보니 제 어리석음이 하냥 부끄러워집니다. 미끄러지고 엎어져서 생긴 생채기, 한 두어군데 없는 이가 있으리이까.
그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보다 깊어지게 만드는 첩경이기도 한 것이던걸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그런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제 편지 공세에 많이 부담스러우셨으리란 짐작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메아리 없는 산울림 같은 행위에 이젠 많이 지치고 상처가 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간의 불행하고 서러웠던 기억의 가지들을 과감하게 툭툭 쳐 내려고 마음 먹었으니까요. 언젠가는 툭,툭, 쳐 낸 그 자리에서 새살이 돋을 터이지요.
.......................................
양철 지붕 위로 굵은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는 것 같이 컴퓨터 자판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구나, 그 동안, 애 마르고 간장을 녹이던 수년 세월의 가슴앓이가 피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우리는 극점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줄 익히 알면서 굳이 수행자의 감정이 나와 같길 바란 욕심은 현상에 집착한 까닭이었음을 구구절절 깨달았다. 세상에 인간이 얼마나 못났으면 짝사랑일까, 남의 일인 줄로만 여겼던 일이 바로 내 일이었다니. 이 무슨 못나빠지게 구차하고 추악한 작태인가. 사랑하고 그리운 감정도 다 마음이 일으키는 작용인데 마음이란 것이 형체가 없어 그럴까, 굳이 마주 앉은 채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으니 말이다.
무인도에 살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만남과 헤어짐과 또는 재회 속에서 사랑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것이다. 누구라도 자기한테 부여된 자기 몫의 삶을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고 성심을 다하면서 살게 마련이지만 가장 인간다운 삶의 첫째 조건은 과연 그 가슴에 얼마만큼 인간적인 정서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지혜가 녹아있는가에 따라 생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숱한 세월 한 사람을 향한 집념과 상처로 인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마땅한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지만, 대개의 상황에 우선하는 것은 언제나 그 바탕에 이기적인 욕망이 있더란 사실이다.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도발하는 염원이 내 안에서 엎치락 뒷치락을 거듭하였다. 오래오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과, 바람이 불지 않으면 추녀 끝의 풍경도 한 점, 맑고 낭랑한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이치가자신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래도 의식은 여전히 초롱초롱해서 주제 넘는 욕심도 부리게 되는 것이었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인 줄 알면서도 이상적인 꿈을 꾼 나와, 왜 그럴 수 없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실재 나 사이의 간극이 다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야생마같이 날뛰는 그 마음을 달래고 추스르기에도 난 이제 너무나 많이 지쳐버렸다.
12. 개꿈
마지막이란 결심으로 고별 편지를 보낸 뒤에도 미련이 남아 진정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방법은 없었던 것인지 아쉬워서 자꾸만 기억의 갈피를 뒤적거렸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답이 뻐언한 문제인 것을, 굳이 자기 통제력의 한계를 무시하려 용을 썼던 지난 일들이 안타깝게 돌아다 보였다.
거대한 내 안의 산맥을 넘어, 누군가가 말하던 '영혼의 제국'을 이룩하리라 공상하면서도 그것이 턱없는 사상누각임을 인지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번민으로 눈물을 흘렸던가. 신기루 사라지듯 내 사랑도 이제는 막을 내리고 결단코 사모의 줄기를 절단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단정해 놓고도 생애 종말 같은 비련의 아픔이 서러워서 꺽꺽 울었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가장자리 안쪽에서 놀아야'만 했던 것일까.
세월이 가르친다는 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자체에 침몰해서 회생불능 상태로 몰아가진 않을만한 융통성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욕심을 지울 줄 아는 용기는, 시간으로부터 얻은 힘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허욕에 엎어져서 버둥거린 어리석음이 터무니 없는 집착임을 깨단할 수 있게 된 분별심도, 모두 다 세월과 함께 다져진 자기 제어의 역량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라고 판단한 것을 즉각 놓아버릴 수 있게 만든 결단력 또한 시간이 일깨워 준 값진 학습의 결과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정 몰라 반복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한 자기 성찰은 나를 한 발짝씩 더 깊고 성숙한 사람으로 이끈 셈이다.
편지를 보낸 지 사나흘 후에 전화가 왔다. 스님의 전화였다. 이젠 사념을 접겠노라, 마지막으로 보낸 내 고별 편지가 스님의 심사를 움직인 것일까. 견박하고 미혹한 중생의 심로(心勞)를 다독여 주실 요량으로 통화를 시도했을 것이란 가늠이 어렵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고 끈질기게 반복되는 컬러링 자체가 그 사실을 대변해주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난 그렇게 목마르고 애타게 기다리던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칫 스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봇물처럼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내 심사를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불구덩이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불길 밖으로 끌어내려 애쓰는 게 인지상정이라며 불을 보고 날아드는 불나방 같은 내 행위를 무모하다, 말리던 스님이셨다. '망념이 본심을 흔든다'는 우려가 지극했던 만큼 망상이나 잡념을 지우는데 지표로 삼음직한 진언으로 내 원기를 북돋우려 마음 쓰던 분이시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에 걸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중생을 바라보며, 결코 편치 않았을 스님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다면 내가 대체 사람 축에 들 수나 있으랴. 예리하기는 칼끝 같이 서늘해도, 인자하고 자애롭기는 봄 햇살 같은분이셨으니 어찌 아니 그럴까. 당장 전화를 받고 싶은 충동에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거듭했으나 결국'참는 것이 낙원의 문을 여는 열쇠'려니 하고, 끝까지 버텼다.
포도주에는 산지(産地)의 향기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인격체로 살아내야 할 것이란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어떤 형태로든 내 고유의 인간적인 향내를 머금은 생애를 위해서 자신을 좀 더 인격적으로 숙성시킬 일을 고심해야 할 일이 아니랴. 기암괴석 벼랑 끝의 낙락장송도 튼튼한 뿌리가 받쳐주어 그 위용을 뽐낼 수가 있는 것처럼 고통을 통해 배운 것이라면 사람이 사람다운 인품을 지향하는 의지야말로 지극히 격조 높은 가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휘자가 눈을 감고도 지휘를 할 수 있는 것은 전체 과정에 대한 이해 때문'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만약 나의 생애도 오케스트라에 비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젠 내 인생의 나머지 과정은 나도 눈을 감고 지휘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징검다리 건너가듯 매사에 조심조심 살았다고 믿지만 그 중에 수행자를 은애한 일은 일생일대의 안타까운 사연이긴 하지만 그 만큼 애달프고 절절한 세기적(世紀的)감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차마 다하지 못 해 남아 있는 말들은 화석으로 굳을지라도 그리운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숨지는 날까지 빠안한 온기로 나를 운영하다가 어느 한 날, 그리움이 쇠해서 짚불 스러지듯 꺼지면 나도 따라 미련 없이 지구촌을 떠나가리라. 그때에 남아 있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그 말은 그대 영원한 내 사랑이여! 언젠가 뜬금없이 지붕 위로 갈 까마귀 한 마리 까욱까욱 슬피 울며 날아가거든 그예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는 제 부음이 당도한 줄 아시고, 입은 옷 채 그대로 선걸음에 달려와 주시렵니까.
그때는 차디찬 주검일망정 비로소 그 가슴에 날 한 번만 꼬옥 품었다가 보내주오. 꽃같이 활활 타는 불길 속에 타고남은 재 있거든 그것 모두 알뜰히 긁어다가 스님 발걸음 자주 오가시는 길, 산 숲의 어느 한 나무 밑에 거름이나 되게 묻어주고, 새봄에 돋아난 푸른 잎 하나, 바람 없는 날에도 팔랑이고 있거든 그것은 틀림없이 스님을 만나 반갑다는 제 손짓인양 여기시고 멈춰 서서 보아주셔요. 비록 가는 길이 서로 달라 다시는 못 만나더라도 행여나 오시려나 믿는 맘 가지고 돌아갈 터입니다.
◆ 에필로그
그동안 혼자라도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던 것은 어떻게 했을 때 기쁘고 즐거운지를 나름대로 터득하고 거기에 익숙하게 젖어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 산, 숲, 나무, 시냇물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알게 모르게 거기에 조금씩 동화 되고,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보면 제 멋대로 인 것 같지만 마음을 가지고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그저 바라보고 마주하는 그 자체로서 이해되고 알아채게 되는 것이 자연이었다. 자연은 인간에게선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명징한 아름다움이나 순수와 교감하면서 만 가지를 구족하고 포용하는 그 자체이다. 머지않아 나도 처음 왔던 곳,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런 미련도, 원망도, 미움도 없이 훨훨 그 자연으로 돌아가리. 그렇게 지나가리라.
무릇 어느 분야이건 자기가 속해 있거나 지향하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초지일관할 수 있는 정신은 대단히 고결한 의지로서 존경 받아 마땅하다. 내가 그 스님을 보면서 열광했던 이유도 바로 그러한 정신이었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그분의 통찰력이었다.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나의 고뇌 역시, 실인즉 특정인에 대한 집착이고, 내재된 무의식의 본능적 발아(發芽)이며, 순전히 원초적인 욕망과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내 영혼의 홀로서기를 위해 묵묵히 도우신 스님의 격려 덕분이라 생각한다. 땅에 심은 씨앗도 더러는 싹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진리를 미완성인 사랑을 통해 공부한 셈이다.
인생 가을의 황혼에 연하의 구도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언감생심 보고 싶다거나, 만나 보자거나 하는 직접적인 말은 한마디, 엄두도 내어보지 못 한 채 먼발치서 체념으로 산 세월이 햇수로 5년째이다. 지독한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분 생각을 할 때마다 풀릴 길 없는 그리움과 사무치는 마음이 한으로 남았다.
어떤 의미로든 제 주제를 파악하는 현실과 자기 인식은 중요한 것이다. 상품으로 치자면 난 이제 유통기한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인생 가을의 재고품(?)이 분명한데 대체 얼마를 더 살아야 거짓말 같이 그를 잊을 수가 있을까.
세상이라는 모래사막을 건너가다,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를 발견한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행운이고 축복이란 생각을 이제는 할 수가 있다.
비록 현실적인 의식거리로는 그가 멀지만 내 맘 속으로는 보내지 않았으므로 내가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는 언제나 내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내 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애련(哀戀)의 그리움과 함께할 것이다.
당신을 이제 막 갠지스 강(江)본류에 도달한 강물이라고 지칭하시던 스님은 '다만 강물처럼 그렇게 묵묵히 흘러갈 뿐'이라고 겸허히 자신을 낮추었지만 갠지스, 그 강물 갠지스가 어디 보통 강이던가.
나무라면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파다가 내 집 울안에 옮겨 심을 수가 있고, 꽃이라면, 그게 만약 내게 의미 있는 꽃이라면, 천 길 낭떠러지 벼랑 끝에 있다 해도 기어이 따오고 말겠지만, 그는 꽃도 나무도 아닌 청산 같은 분이시라 어디에도 들일 데가 없으니 절망으로 무너지는 가슴 가득 동동 구를 안타까움만 그지없을 뿐이다.
세상 것 다 버리고서라도 그와 마주 할 수 있다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헛된 망상으로 생의 황혼을 견딘다.
만약 누구라도 나를 보고 지금의 심경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구두를 신고 있는 자신 이외에는 그 구두의 어느 부분이 발을 아프게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영국 격언으로 대신하고 싶다.
▷필자 약력
- 홍지운(필명'67)
- 전 간호사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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