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제2의 이만섭을 기대한다

제19대 국회 임기가 5월 말에 끝나지만 사실상 국회는 마비 상태다. 이대로라면 19대 국회는 기득권만 지키려다가 끝을 냈다는 오명을 얻는 것은 자명하다. 국민들은 19대 국회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여야가 서로 싸우지 말고 국민들을 위해 일 좀 하라는 정도의 소망만 품었다.

하지만 그 기대의 결과는 어떤가. 4'13 총선을 앞두고 현재 선거구가 이미 법적으로 무효가 됐는데도 여야는 뒷짐만 지고 있다. 8일은 임시국회 회기 마감일이다. 여야가 이날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넘기지 못하면 선거구 실종 사태가 장기화된다. 총선 예비후보는 명함 배포를 하지 못하고, 현수막도 걸지 못한다. 사실상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한다. 반면 현역 의원들은 13일까지 의정보고서 배포와 의정보고회 개최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불공정한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비후보들은 선거구 실종 사태에 대해 법적 소송을 내고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지만 여야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법안 심의 역시 뒷전으로 밀려 있다. 주요 쟁점 법안 협상은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로 쳇바퀴만 돌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은 무엇보다 정치권 전체가 개인의 이익과 계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공천 경쟁과 권력 다툼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협상 대신 국민의 이해와는 사실상 전혀 상관없는 내부 공천 규칙 논의에만 몰두하고 있다. 야당도 패권 경쟁을 벌이는 데에만 치중해 법안 처리와 선거구 협상을 외면하고 있다.

이처럼 19대 국회가 사상 유례없는 직무유기를 하면서 대구경북에서 현역의원 물갈이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비후보들도 현역의원 교체를 요구하면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예비후보들은 앞다퉈 출마선언을 하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이루고자 하는 정책을 말하는 대신 '친박(친박근혜)'만을 부르짖는다. 서로 '친박이다', 아니다 '가박이다'라는 소모적인 논쟁도 한창 벌어지고 있다. 유권자들도 이들을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친박을 부르짖는 이들은 계파의 이익만을 챙기는 정치 행태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적 소신과 지향점 없이 계파만을 추구하는 현역의원과 예비후보를 바라보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정치인 두 명이 떠오른다. 바로 유수호 전 국회의원과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다. 두 사람은 대구경북이 배출한 정치인으로 후배 정치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 살 터울이지만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별세해 안타까움을 줬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유 전 의원은 13대(1988년)'14대(1992년) 총선 때 대구 중구에서 각각 민정당과 민주자유당 후보로 당선됐다. 1995년 9월 유 전 의원은 "과욕을 부리기 전에 그만두겠다"며 15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유 전 의원에 대해 "소탈하고 대범하면서도 의리 있는 정치인이었다. 무엇보다 여당 국회의원이었지만 강단 있고 소신이 있어서 때에 따라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유 전 의원의 별세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국회의장을 두 번 지낸 이 전 의장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 전 의장은 3선 개헌에 반대하고, 날치기 법안 통과에 반대한 강단 있는 정치인으로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국회의원은 계파나 당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부터 생각하라. 대한민국 국회는 여당과 야당, 청와대의 국회가 아니라 국민의 국회"라는 말로 유명하다.

20대 국회에서는 제2의 유수호 전 의원과 이만섭 전 국회의장 같은 대구경북 정치인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20대 국회는 '국민 앞에 떳떳한 국회', '제발 좀 일하는 국회',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어달라는 국민의 외침에 응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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