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포연(砲煙) 짙은 전선고지
저녁 6시쯤 소금물을 바른 주먹밥을 한개씩 나누어 먹고 산병호로 돌아가려는 우리에게 박격포탄의 세례가 이어졌다. 응급결에 옆의 바위틈 사이로 몸을 피했다. 말도 없이 옆에서 쓰러지는 전우와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고 "나죽는다"라며 소리치는 자가 무수히 생겼다. 분대장은 "적탄이다. 자세를 낮추어 전방을 관찰하라"고 소리쳤다.
위생병이 올 때까지 부상자의 아우성과 몸부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참혹스러웠다. 분대장은 탄착지를 피해가며 분대원의 산병호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펐다.
"너는 이쪽을 보고 총을 쏴 알았나?" "너는 이쪽이다. 적이 있는 곳은 저쪽이다, 조심해"하며 다음호로 뛰어갔다. 분대장이 가고 나서 바로 그때 솔방울 같은 것이 굴러오더니 내 옆에서 웅장한 폭음을 내면서 폭발했다. 차폐(遮蔽)와 엄폐(掩蔽)를 해가며 다음호로 이동하던 분대장은 큰소리로 우리에게 소리쳤다.
"너희들 괜찮나, 적 수류탄이 옆으로 굴러 오거든 막대기로 내쳐라. 겁내지 말고 침착해라, 당황하지 말고."
믿음직스러운 분대장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후 수없이 굴러터지는 적의 수류탄과 기습해 오는 적을 맞아 대전을 해야했다.
'이것이 전쟁인가, 전쟁이 이것인가.' 공포와 분전(奮戰) 의식이 엇갈려왔다. 그때 높은 곳에서부터 소대장의 고성이 들려왔다. "1분대장, 3분대장 앞으로."
이 소리를 들은 분대장들은 빠른 걸음으로 소대장에게 달려갔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일까? 숱한 의문의 꼬리가 늘어졌으나 그것이 군대에서 쓰이는 상례적인 작전명령의 하달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작명을 받은 분대장은 돌아와서 "각자 분대장 앞으로"라고 소리쳤다. 이내 모두 뛰어서 분대장 앞으로 갔다. 우리를 본 분대장은 힘찬 말로 작전을 지시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험한 바위를 의지해 가며 공격을 대비해 왔으나 항상 적의 피습을 먼저 받고 있었다.
"모두 잘 들어라. 지금까지 우리는 적을 유인하기 위해 방어전에만 열중해 왔다. 이제부터는 공격전으로 전환하여 작전을 수행하니 나의 지시를 잘 따라라. 1번은 저쪽 언덕 밑 바위 밑에, 2번은 저쪽 언덕 밑 바위 옆에 가서 붙어라. 그리고 3번, 4번은 이 산 언덕 위에서 대적하고, 5·6번은 저쪽 오른편 바위를 의지하고 대적하며 7번, 8번은 분대장 옆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마지막 9번의 황 병사는 3·4번의 지원병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그는 이내 말을 이었다. "다음은 적의 동향이다. 적은 이 유학산 산정에서 우리의 공격을 악착같이 막고 있고 일부 병력을 하산시켜 우리를 공격하려한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는 기어오르는 적의 앞길을 틔워주고 뒤에서 공격해 적을 섬멸하고 산정의 적을 타격하고자 한다. 알겠나."
분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 "넵" 하며 자기위치로 돌아가 공격명령을 기다렸다. 밤 10시가 가까워지자 산 밑에서 경계중인 병사로부터 적발견의 신호탄이 올랐다. 분대장은 "각자 정위치로"라고 소리쳤다. 모두 산병호를 벗어나 각자의 정위치로 옮겨갔다. 그때 '딱콩' 하는 적의 총성과 함께 적병이 열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금방 방아쇠를 당겨 적을 공격하고 싶었으나 분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병이 거의 산비탈에 들어섰을 때 천동같은 분대장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M1소총으로 일제히 사격을 하니 한줄로 들어섰던 적병은 보기 좋게 쓰러졌다. 그러나 산정을 향해 올라가던 적은 발길을 돌렸으나 우리의 위치를 간파하지는 못했다. 4주 경계를 하고 있는 적에게 조준사격을 하는 분대장의 사격술은 탄복할만큼 정확했다.
옆으로 도주하던 적은 우리의 잠복병에게 살상되고 생존자는 3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밤의 전과는 부상 2명에, 적포로 3명, 적사살이 15명이나 되었으나 나머지 생존자는 도주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밤 10시가 지나니 산정의 적정이 심상치 않았다. 소대장이 중대장 앞으로 달려가고 중대에서 돌아온 소대장은 분대장을 모아 작전을 수립했다. 현재까지 우리는 미 공군에 의지하여 주간에만 작전을 수행했으나 이제는 우리도 야간전투를 해야한다는 전투의지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밤 12시를 기해 각 소대는 엄밀하게 작전개시선까지 전진하여 다음 공격명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모두 숨을 죽여가며 공격개시선까지 포복으로 전진했다. 공격개시선에서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대검도 총선에 꽂았다. 비상대기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흘러 새벽 1시가 되었다. 그때 천둥같이 엄한 작명이 중대로부터 하달되었다. "각소대 공격개시"라는 신호에 따라 소대마다 '1분대 앞으로', '1번 앞으로'의 고성이 산 전체에 퍼져갔다. 대기했던 산정의 적은 보기 좋게 올라가는 우리에게 수류탄 세례를 가해왔다. 산정을 올라가던 우리 병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류탄을 안고 절명했다.
이 위기를 돌파할만한 아무런 묘책도 없었다. 무작정 병력만 소진시킬 것이 아니라 산정을 탈환할 묘안이 서지 않았다. 후방의 중대에서는 공격을 재촉했다. 모르는 사이에 1소대장이 부상을 입고 후송되고, 선임하사가 전사했다는 비보는 전투를 처음하는 신병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이윽고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병력의 노출은 우심해졌고, 적의 대응도 치열했다. 이때 우리 분대장은 다른 분대장에 앞서 전략을 펴나갔다. 1번병에서부터 나에게 이르기까지 소음을 죽여 가며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돌격하면 앞으로 나가지 말고 엉덩이만 들고 '야앗' 하고 소리쳐라. 그리고 적의 사격과 수류탄 투척이 멈추면 '앞으로' 하고 소리칠테니, 일어나서 앞으로 공격을 취하라. 알았지."
이렇게 지시된 요령대로 분대장의 돌격명령에 이동하지 않고 엉덩이만 치켜 올리고 '야아' 하고 고성만 질러댔다. 그랬더니 적은 정말 돌격하는 줄 알고 무수한 수류탄 세례를 해왔다. 분대장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되고, 적의 수류탄이 소진해갈 때에 분대장은 '앞으로'의 명령을 하달하여 우리 분대 전원이 '야아'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산정으로 달려갔다. 가다가 쓰러지는자, 소총에 희생되는 자가 속출했으나 우리의 공격에 발맞추어 1소대와 2소대의 지원공격에 적은 설자리를 잃고 산정을 떠났다.
"만세! 만세!" 만세 소리가 이때처럼 감격스러울까. 이윽고 중대장, 소대장이 산정으로 올라왔다. "여기가 산정이지" 하는 중대장의 기쁨에 넘친 모습과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는 소대장의 반응이 산정을 흔들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태극기가 휘날리고, "중대장님" "소대장님"을 외치는 병사들의 환희와 감격을 안고 다부원의 아침은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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