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효령에서 북진할 때 대구로 통하는 신작로를 보니 지난일이 회상됐다. '이젠 다시 돌아 갈수 없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행군을 계속했다. 걷다가 쉬고 쉬었다가 계속하는 행군은 고지에서 전투하는 것 못잖게 힘들다."
7. 화령장(化寧場)의 잔비(殘匪) 소탕
가산의 다부원 전투가 끝나자 진지를 미군에게 인계한 우리는 영천 신녕(新寧)에서 공격전에 참전해 군위 효령의 '272.4' 고지를 승전으로 마무리하고 북진 대렬에 참여하게 되었다. 군위 효령에서 북진할 때 대구로 통하는 신작로를 보니 지난일이 회상됐다. '이젠 다시 돌아 갈수 없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행군을 계속했다. 걷다가 쉬고 쉬었다가 계속하는 행군은 고지에서 전투하는 것 못잖게 힘들다. 2일만에 우리는 선산에 도착해 하루 휴식하고 행군을 시작했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상주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지난날 내가 다니던 방향과 같았다.
그래서 '내 고향인 문경으로 가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상주읍에서 방향을 바꿔 화북면 쪽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상주읍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어머님이 꿈에 나타나 반가와 했던 일도 아련히 떠올랐다. 땀을 흘리는 모습으로 '너 왜 그렇게 있어 말썽피우지 말고 잘 따라해' 하시며 눈물지으시는 모습이 아침 식사시간까지 눈앞에 떠올랐다. 아침 식사시 부식으로 가져다 주는 부락민의 희사물이었는데, 8월 추석 음식물이어서 모두 맛이 변해있었다. 어떤 병사는 '우리를 먹여 죽이려는 적의가 있지 않은가' 하며 총을 들고 달려가려 했다. 분대장과 내가 극렬하게 만류해 위기를 면했다. 부락민은 송구해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했다. 따뜻한 송별인사를 뒤로한 채 행군을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천택산(天澤山)을 끼고 걸어가는 우리들은 피로해 있었다.
화북으로 넘어가는 갈영(葛嶺) 고개를 새 번이나 쉬어가며, 겨우 화녕의 용유리(龍遊里)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지나서였다. 분대별로 배정된 민가에 가서 발을 씻고 쉬었다. 분대장 모임에서 돌아온 분대장은 2명에 한 집씩 민가를 배정하고 그날 밤을 그 집에서 쉬게 했다. 박종락과 함께 배정된 집에서 저녁밥을 얻어먹었다. 후방에서 수송되는 급식은 그때까지 오지 않았다.
삼봉산(三峯山) 아래 자리한 용유리 주민들은 북으로 진군하는 우리의 행렬을 가로 막으며 사정을 했다. "대장님, 우리를 구해주시오. 우리는 못살겠습니다. 저녁만 되면 저 삼봉산에 숨었던 패잔병이 부락에 나타나서 물건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가고 있으니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중대장은 수명한 작전명령은 아니나 국민의 안위문제라 하며 그들의 말을 새겨들었다.
중대장은 5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각 소대장을 모아 작명을 하달했다. "이곳 주민의 신고에 따라 우리는 저 삼봉산에 은거중인 패잔병을 소탕하여 주민의 안전을 도모 한다"라면서 각 소대별 작전구역을 정하고 명령을 하달했다. 우리 소대는 부락 앞 용유계곡을 끼고 흐르는 계류(溪流)를 경계로 하여 그날 밤을 지냈다. 밤 1시가 지나서 무엇이 '철펑'하며 물 건너는 소리가 들려 옆에 자고 있는 박종락을 깨워 함께 귀를 기울여가며 경계를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또 '철펑'하는 소리에 나는 M1소총의 자물쇠를 풀고 격발태세를 하면서 앞으로 나가 힘차게 외쳤다. "정지, 누구야?" 하니 엎드려 기고있던 패잔병이 서서히 일어서며 두 손을 위로 들었다. 나는 패잔병이 서있는 5m 앞까지 접근하면서 "뒤로 돌아" 하고 힘차게 외치며 포로의 관리규칙대로 5m 전방에서 패잔병을 뒤로 돌아세우고 두 손을 높이 들게 했다. 패잔병을 앞세우고 소대본부로 가서 인계하고 돌아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소대장과 선임하사는 만족하게 웃어가며 "네가 포로를 잡아. 이거 하늘이 놀라겠다"라고 했고, 선임하사는 "개도 딸 낳을 때가 있다더니 아기가 포로를 잡아"라고 웃어 주었다.
"패잔병의 소탕은 포로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패잔병의 집결지를 손쉽게 점령할 수가 있었다. 새벽 4시를 기해 공격이 개시되어 1소대와 3소대는 정면을, 2소대는 적의 후방을 공격하여 잔병을 소탕하고 거기에서 노힉한 물품은 백미 3가마니, 농우 12두를 획득했다."
이렇게 해서 패잔병의 소탕은 포로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패잔병의 집결지를 손쉽게 점령할 수가 있었다. 새벽 4시를 기해 공격이 개시되어 1소대와 3소대는 정면을, 2소대는 적의 후방을 공격하여 잔병을 소탕하고 거기에서 노힉한 물품은 백미 3가마니, 농우 12두를 획득했다.
혹시 잔병이 숨어있지 않을까 걱정돼 산 전역을 수색 후 철수했다. 돌아오는 행군에 힘이 부친 나는 절룩거리며 행렬에서 처지고 있을때 소대장과 분대장은 걱정을 해가며 나의 걸음을 재촉했다. 대로로 나와 전 중대가 걷고 있을 때 중대장의 순시가 있었다. 우리 소대에 들어선 중대장은 전 대원의 장비를 확인하고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나의 차례가 되어 곁에 온 전자렬 중대장은 기쁘고 반가운 웃음을 띄며 "오, 너 여기와 있었구나. 잘 싸웠어?" 라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대장은 웃어가며 "힘은 약하지만 잘 따라하고 있습니다"라고 했고, 듣고 있던 중대장은 "소대장, 부하인 병사들은 모두 내 몸의 1부야. 부하가 아프면 내 몸이 아픈 것과 같아 못한다고 꾸짖지 말고 못하는 부하를 달래며 돌봐야해"라며 우리 소대를 떠났다.
휴식이 끝나고 행군이 시작될 때 1소대로 갔던 중대장이 돌아가는 길에 들렀다. 나의 걸음걸이를 살피더니 소대장을 소리쳐 불렀다. 중대장의 호출을 받은 소대장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달려온 소대장에게 자상한 어조로 나를 손짓하며 말했다.
"저 아이 소에 태워서 가도록" 하고 지시했다. 12두의 소를 몰고 용유리로 돌아가는 우리에게는 그것도 큰 짐이 되었는데, 힘이 달려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소에 태우고 가자하니 소대장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중대장의 명령이었다. 건장한 소를 골라 나를 태워가기로 했다. 소를 타니 소를 모는 사람이 또 필요했다. 소를 모는 목우자가 있기는 했으나 한둘만을 별도로 모는 우목자는 없었다. 그러나 중대장의 언명에 따라 별도의 목우자를 정하여 소를 몰게 했다. 소를 타고 가는 나는 다행이었으나, 소를 모는 병사의 마음은 불쾌하기 한이 없었다. 소를 탄 나를 흘 켜보면서 "제기랄 어느 놈은 인삼 먹고 어느 놈은 무 먹나"하며 비꼬아댔다. 소를 타고 가는 나는 미안하여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때 엉덩이가 배겨왔다. 엉덩이를 들어도 보고 소의 등 위에 엎드려도 보았으나 아무것도 깔지않은 소 등은 매우 불편스러웠다.
소를 몰고 가는 병사는 못마땅해 하는 나를 보며 욕설을 계속했다. "소타기 불안하면 걸어가라. 소는 너 태우려고 온 것이 아니야. 별꼴이야. 어느 놈은 걸어가고 어느 놈은 소를 타고도 불편해하니 이게 군대야." 계속 불평을 토했다.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야 하는 나의 처지도 말이 아니었다. 이런 욕, 저런 욕을 해가며 목적지에 도착할 때는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주변을 스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여러 주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다. 중대장은 환영인파 속으로 걸어가서 환영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우리가 몰고 온 소는 주민들에게 돌려드린다고 말을 하자 주민을 대표하여 그곳의 이장과 유지 몇 사람이 중대장 앞으로 찾아와서 "대장님 우리를 위해 애써 주신 공만 해도 큰 데, 이 소까지 우리에게 넘겨준다 하시니 이렇게 고마울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다 가지려 하는 것도 우리들의 지나친 욕심이니 2마리로 수고한 대원들의 회식이나 하십시오"라며 두 마리의 소를 우리에게 인도하고 마을로 돌아갔다. 건네준 소 두 마리로 그날 저녁 기쁨에 넘치는 회식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소고기 한 점 먹어보지 못했던 병사들에게는 무한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부원을 비롯한 수많은 싸움에서 유명을 달리한 전우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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