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카' 세계에 알린 모녀 의사…의사 가족이 원인 규명 성과

브라질 소두증 아기들 진료

브라질 페르남부쿠주의 헤시피에서 일하는 소아신경과 전문의 바네사 반 데르 린덴(46)은 지난해 8월의 어느 날 두뇌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선천성 기형인 소두증 아기를 3명이나 진료했다.

평소에 서너 달에 한 명씩 만나는 소두증 환자가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그다음 주에도 소두증 아기들이 계속 찾아오면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무렵 헤시피의 다른 병원에서 의사로 있는 어머니 아나 반 데르 린덴(75)이 자신도 하루에 7명의 소두증 아기를 진료했다고 딸에게 알려왔다.

이들은 서로의 진료 사례를 비교하며 원인을 규명하기 시작했고, 10월 소두증 신생아 출산이 지카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건 당국에 처음 보고했다.

뎅기열의 '덜 무서운' 사촌쯤으로 여겨졌던 지카 바이러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위험성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시사지 타임에 따르면 바네사는 소두증 아기의 뇌를 컴퓨터단층촬영(CT)한 결과 일반적으로 소두증을 유발하는 풍진이나 톡소포자충 감염의 경우와는 뇌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산모를 문진하던 중 소두증 아기를 낳은 일부 산모가 임신 초기 가벼운 발진을 앓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어머니 아나가 진료한 소두증 환자의 산모도 비슷한 증상을 기억해냈다.

이들 모녀는 산모들이 전한 증상을 토대로 모기 매개 감염병의 가능성을 의심했고, 일단 증상이 상대적으로 심한 모기 매개 감염병인 치쿤구니아의 가능성은 제외했다.

마침 지난해 브라질 보건 당국은 뎅기열의 이례적인 확산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브라질 뎅기열 환자는 2014년에 비해 800%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반 데르 린덴 모녀를 비롯한 신경과 의사들은 뎅기열로 분류된 환자들의 상당수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이며, 이것이 소두증 신생아 출산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나는 WSJ에 "내 의사 인생을 통틀어 이러한 규모의 감염병 유행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우간다에서 처음 발견된 후 증상이 가볍고 치사율도 극히 낮은 감염병으로 알려져 왔다. 브라질의 경우처럼 많은 인구에 폭넓게 확산된 적도 드물어 신생아 소두증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일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임신 중 지카 바이러스 감염과 소두증 신생아 출산 사이의 인과관계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밝혔다.

WHO가 비교적 빠르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지카 바이러스에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선 데에는 반 데르 린덴 모녀의 빠른 상황 판단과 보고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독일'네덜란드계 이민자 가정인 반 데르 린덴 가족은 두 모녀 외에도 3명의 의사가 더 있는 의사 가족이다. 바네사의 여동생 엘리오(42) 역시 브라질의 또 다른 지역인 고이아니아에서 근무하는 소아신경과 의사로, 역시 소두증의 이례적 확산에 주목해 어머니, 언니와 함께 원인 규명에 기여했다.

바네사 반 데르 린넨 캠프는 "소두증 아기를 둔 어머니들이 아이가 1, 2년 후에 어떻게 될지를 묻는다"며 "그러나 뇌 손상이 심각해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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