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슬픈 코미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간 것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다. 당시 미 국무장관인 딘 러스크(1909~1994)는 회고록에서 그때의 긴박한 상황을 이렇게 썼다.

'케네디 대통령은 10월 22일 오후 7시에 국민에게 TV 연설로 쿠바 사태를 알리기로 결정했다. TV 연설 두 시간을 남겨놓고 대통령은 약 30명의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처음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케네디는 소련 수송선을 쿠바 앞바다에서 봉쇄하는, 해상 격리 작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말할 차례가 되자, 윌리엄 풀브라이트와 리처드 러셀 의원은 해상 격리가 아니라 즉각 쿠바를 공략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날 즈음에는 그들도 대통령을 지지했다. 풀브라이트와 러셀은 대통령의 결정을 불안하게 생각했지만, 공공연하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그곳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이 격리 작전을 할 수 있는 헌법적인 권한이 있느냐고 캐묻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승인받기 위해 의회에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한 의원은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하느님! 제가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사건으로 케네디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하나로 남았고,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멍청한' 지도자로 기억된다.

이 회고록을 읽으면 미국과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수 없겠지만, 핵위기를 눈앞에 둔, 두 나라의 대처법과 지도자들의 자세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가 위기 상황이 되면 행정부'의회가 똘똘 뭉쳐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는 데 반해 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자기 목소리 내기에만 바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하고 아예 대화 상대로 여기지도 않고, 야당은 정부에 협조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풍'(北風)이라고 공세를 편다. 극단적인 주장과 아집만 난무할 뿐,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과 사고는 설 자리조차 없다. 속된 말로 '잘되는 집구석과 못되는 집구석'의 차이라고 할까. 국가 위기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한 편의 잘 만든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코미디의 정점이 '비극'이라고 하니 '슬픈 코미디'라 일컫는 것이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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