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는 사람에 골목해설

시각장애 최은찬·권윤경 씨, 중구 골목문화해설사 활동

골목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윤경(왼쪽), 최은찬 씨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은 귀로 보고 마음을 통해 문화를 전한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골목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윤경(왼쪽), 최은찬 씨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은 귀로 보고 마음을 통해 문화를 전한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엄마 좀 웃어봐. 윤경이 이모는 손동작도 하고 표정도 좋은데 엄마는 왜 이렇게 굳었어."

해설을 지켜보던 초등학교 6학년 딸의 조언에 억지로 웃어보지만 최은찬(44'시각장애 2급) 씨의 표정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딸이 언급한 '이모'는 동료 권윤경(36'시각장애 1급) 씨다. 최 씨는 "몇 년 전 아나운서 체험활동에 참여한 딸에게 못한다고 타박했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웃었다.

시각장애인인 최 씨와 권 씨는 대구 중구에서 골목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3월 중구청과 남산종합사회복지관, 대광불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시각장애인 골목문화해설사 양성프로그램'을 수료한 이들은 지난달부터 근대문화골목 2코스와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배치됐다.

두 사람은 이론교육(3개월)과 현장실습(6개월) 과정을 거쳐 골목문화해설사증을 당당히 목에 걸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보이는 것'을 익혀야 했기 때문. 두 사람은 24시간의 이론교육을 모조리 녹음해 수십 번 반복해 들었다. 권 씨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외우는 게 최고의 공부법이었다"며 "10개월간 출석률 100%에 누구 하나 지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 씨는 교육을 통해 또 다른 선물을 얻었다. 사춘기로 갈등을 겪던 딸과의 관계가 돈독해진 것이다. 하굣길 교통정리 봉사를 하던 엄마를 피해 먼 길을 돌아 귀가했던 딸이 이제는 현장실습을 나가는 엄마의 활동보조인으로 따라나서고 있다. 딸은 엄마의 눈이 돼주며 자연스레 엄마의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 최 씨는 "사람들을 인솔하며 도로를 건널 때가 가장 마음이 조마조마하는데 딸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수료식 때는 딸과 부둥켜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권 씨는 투어를 진행할 때마다 본인의 시선이 관광객들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는 게 교감의 첫 번째라 생각해서다. 권 씨는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 관광객들에게 '무엇이든 만져보라'고 제안한다. 읍성의 돌, 박태준 노래비와 99계단에 새겨진 글자, 이상화 고택의 기둥 등 모든 것이 대상이다. 권 씨는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면 모든 사물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 경험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작은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장애인들 속에서만 살던 내가 이제는 누구와도 대화하고 만날 용기가 생겼다. 앞으로 더 많이 만나 그들에게 잊히지 않는 해설사로 남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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