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다룬 영화'사울의 아들' 등
많은 예술 작품으로 복원된 아우슈비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역사적 기록 부족
더 많은 '귀향' 만들어 후손에게 전해야
오랜만에 영화를 두 편 보았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헝가리 영화 '사울의 아들'과 위안부 문제로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 영화 '귀향'이다. '사울의 아들'을 보고 나서 십여 년 전 어느 가을날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격했던 참혹한 장면들이 떠올라 한동안 고통스럽기도 했다.
아우슈비츠, 폴란드어로는 오시비엥침이라 불리는 그곳은 중세 동유럽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고도 크라쿠프에서 멀지 않다. 시외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 도시에는 두 곳의 강제수용소가 남아서 홀로코스트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는 독일어 문구가, 고압 철조망에는 폴란드어와 독일어로 쓴 '멈춤'이라는 표지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연합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나치는 증거를 인멸하지 못했고, 덕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엔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단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러시아 등 각 나라 말로 이름표가 적혀 있는 수감자들의 개인 물품, 수북이 쌓인 옷가지와 신발, 안경 등으로 희생자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가장 처참한 곳은 노약자나 병자 등 노역 불가능자들을 대량 학살했던 가스실과 소각장인데, 가스실의 벽은 죽어갔던 자들이 남긴 손톱자국으로 하얗게 파여 있었다.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관람객들은 독일인 단체와 국기를 몸에 두른 이스라엘 학생들이었다.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그곳은 잊지 말아야 할 과거를 현실로 불러내는 공간이었다.
영화 '사울의 아들'은 이 수용소에서도 가장 끔찍한 가스실과 소각장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주인공의 일상을 그려낸다. 목욕을 한다고 속여서 탈의를 시킨 유대인들을 한곳에 몰아넣어 가스를 살포하고, 15분 후 겹겹이 쌓인 시신을 나누고 소각하는 과정을 충실히 행했던 이들은 같은 처지의 수감자들이었다. 몇 달 동안 작업을 이행한 후 이들 역시 똑같은 운명에 처해지기 마련이었다.
끔찍한 학살의 공간에 존재하는 휴머니즘이나 예술의 구원에 주목하는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영화와 달리, '사울의 아들'은 학살의 잔혹함을 일상으로 드러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끔찍한 살육 장면들에 곧 익숙해진다. 현실에 순응하는 인간의 무기력함은 나치가, 아우슈비츠가 가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보여준다. 그 맹목적 순응도 주인공이 처리해야 할 시신 더미 속에서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는 순간 달라지지만 말이다.
우리 영화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초경도 겪지 않은 어린 소녀가 끌려가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고, 병들거나 반항하면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던 머지않은 과거를 이야기한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시기 우리 민족이 경험했던 비슷한 사건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총살당한 시신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구덩이에서 공포에 질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상상도 못할 허구가 아니라 식민지 국민이 겪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귀향'을 보고 나오는데, 영화 주인공 또래 소녀가 제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말한다. "에이, 설마 정말 저렇게까지 끔찍하진 않았겠지?"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에겐 죽은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증거가 남아있는데 말이다.
톨스토이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이야기하는 '전쟁과 평화'를 쓰면서 "다른 방법으로 역사의 증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건을 피상적으로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체험한 개인의 고통을 온전히 복원하는 예술적 기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문학작품이, 영화가 있지만 앞으로도 아우슈비츠는 여러 나라 예술가의 언어로 끊임없이 복원될 것이다. 역사적 기록도 부족하고 살아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에도 무심한 우리에게 또 다른, 더 많은 '귀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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