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 안동의 보물을 찾다] <3>퇴계 예던길

은빛 강·푸른 산·역사의 숨결…한폭의 동양화 속으로

퇴계는 13세 때 학문을 배우려고 집에서부터 숙부 이우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현 청량정사)까지 50리 낙동강변을 오르내렸다. 퇴계는 산과 강 사이를 따라 난 그 길을 걸으며 \
퇴계는 13세 때 학문을 배우려고 집에서부터 숙부 이우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현 청량정사)까지 50리 낙동강변을 오르내렸다. 퇴계는 산과 강 사이를 따라 난 그 길을 걸으며 \'청량산가\'를 비롯해 청량산의 운치를 찬탄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 칭했던 퇴계가 걸었던 \'예던길\'. 엄재진 기자

조선 성리학을 완성시킨 퇴계 이황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퇴계 예던길'은 1천원권 지폐에서 시작된다. 1천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진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 위작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퇴계는 화폐 인물 중 유일하게 앞'뒷면에 모두 등장한다.

퇴계는 뒷면 그림 속에 있는 서당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이 서당은 도산서원으로 확장되기 전 '도산서당' 모습이라는 주장과 퇴계 종택 옆에 있는 '계상서당'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림 아래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위쪽으로 바라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1천원 지폐 속에 등장하는 자연산수는 퇴계 선생이 사색하고, 정치를 고민하고, 후학들과 철학을 주고받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철학자 퇴계 선생이 걸었던 '퇴계 예던길'을 따라 걸으면 사색에 잠겨 길을 걸었던 퇴계와 그 후학들처럼 맑은 봄 햇살과 바람을 즐길 수 있다. 느긋하게 이 길을 걸으면 500년 전 거유(巨儒)가 된 듯한, 자연을 즐기던 수백 년 전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길 떠난 사람 발길 붙잡는 수백 년 역사의 흔적

안동 도심을 지나 도산서원과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30여 분 남짓 달리다 보면 수몰민들의 애환이 깃든 도산면 서부리 이주단지가 안동호 곁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 뒤편 산자락으로 한국국학진흥원이 들어서 있고, 이내 경상북도 산림박물관과 도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도산서원 주차장을 지나 고갯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퇴계 선생을 비롯한 한국 정신문화를 배울 수 있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눈에 들어온다.

수련원 앞쪽 양지바른 곳에는 퇴계 이황의 종택(宗宅'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종택 옆에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정자가 있다. 종택 솟을대문에는 퇴계의 손자며느리 안동 권씨의 정려가 걸려 있다. '烈女通德郞行司 醞署 直長李安道妻恭人安東權氏之閭 '(열녀통덕랑행사온서직장이안도처공인안동권씨지려)라 쓰여 있다. 별도의 정려각 없이 솟을대문에 정려를 걸어 놓은 것은 퇴계 가문의 검소함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종택을 지나 상계'하계마을 초입 왼편 산허리에 퇴계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하계마을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된 곳이다. 경술년 국치를 당하자 이 마을 선비였던 향산 이만도 선생은 단식해 24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순절, 전국 유림과 선비들의 자정순국 도화선이 됐다.

향산 선생은 아들과 손자, 며느리 등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서는 등 이 마을에서만도 25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됐다.

하계'상계마을을 지나 고갯길을 넘으면 육사 이원록 선생의 고향 단천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지금 한창 3대문화권사업의 하나로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이육사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육사 생가터 공원에 컨테이너로 옮겨졌다. 반드시 시간을 내서 들어가 볼 곳이다.

도산서원 입구에서 시작해 퇴계종택-하계마을-광야오솔길-이육사문학관으로 이어지는 하루 나절 길을 걸으면서 퇴계와 육사를 만나는 것도 걷는 기쁨을 만끽하기에 조금의 모자람이 없다.

◆은빛 강'푸른 산, 그림 속 들어가는 듯 '퇴계 예던길'

문학관에서 길을 따라 1.4㎞쯤 간 뒤 왼쪽으로 접어들면 단천교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녀던길'(옛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퇴계 선생께서 즐겨 다니시던 오솔길'이라는 설명이 있다.

퇴계 선생의 후손인 이동수 전 성균관청년유도회중앙회장은 "예던길을 잘못 알고 쓴 말"이라 했다. '예(曳)던길'에서 '曳'(예)는 '끌다, 고달프다'는 의미. 이 회장은 "선현들이 '신발과 지팡이를 끌고 다니셨던 길'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퇴계 선생이 유유자적 한가로이 즐기며 사색하듯 걸었던 길이 아니라 낙향에도 불구하고 숱한 임금의 중앙 정치로의 복귀 권유 등 어지러웠던 정치사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걸었던 길이었다. 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정치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후학들과의 끊임없는 토론 등 치열했던 철학적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걸었던 길이었으리라.

길 끝에는 '청량산 조망대'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길게 흘러 내려오는 낙동강 은빛 물결과 멀리 보이는 청량산을 보고 있노라면 강변 길을 따라 허위허위 걸음을 옮기는 퇴계 선생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이는 듯하다. 맑은 날이면 청량산 자란봉(해발 806m)과 선학봉(826m)을 연결한 '하늘다리'도 볼 수 있다.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지는 강변 길 끝에는 학소대와 애일당'농암종택이 있고, 그 굽이를 돌아서면 가송리 쏘두들 마을로 접어든다. 흔히 퇴계 예던길은 단천교부터 청량사까지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 길은 낙동강 은빛 물결을 따라 푸른 숲 속으로 난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4~5㎞의 오솔길이었다. 하지만 오솔길 중간의 사유지로 인해 건지산과 삽재~옹달샘을 잇는 4.1㎞의 산길인 '수림탐방로'를 새로 만들어 수변 오솔길로 연결해 놓고 있다.

이 때문에 전망대에서 4.1㎞의 수림탐방로와 옹달샘~애일당~분강서원~농암종택~가사리(가송리)~고산정을 잇는 3.3㎞의 수변탐방로가 '퇴계 예던길'의 정취를 잘 전해준다.

또 다른 예던길은 단천교를 건너 왼쪽 길로 접어들면 된다. 이 길을 가다 보면 또 하나의 전망대가 나온다. 낙동강 오른쪽 수변 탐방로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벽력암과 월명담, 가송리와 고산정을 잇는 5㎞의 수변탐방로로 조성돼 있다.

◆한속담'학소대'풍혈'경암, 곳곳에서 퇴계를 만나다

1564년 어느 날, 퇴계 이황 선생은 13명의 지인을 초대해 도산서당을 출발해 가송을 거쳐 청량산으로 향했다. 이 길이 오래도록 선생이 걸었던 '퇴계 예던길'이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烟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 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曙色初分日欲紅'서색초분일욕홍). 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溪上待君君不至'계상대군군부지),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擧鞭先入畵圖中'거편선입화도중).'

퇴계 선생은 여러 번의 청량산행 가운데 마지막 청량산행에서 학소대와 가송의 맹개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서 친구인 이문량에게 이 시를 써 보냈다. 이 시에서 퇴계 선생은 자신이 걸었던 길에 대한 감흥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고 표현했다.

수림탐방로가 조성된 삽재에서 옹달샘으로 이어진 나무 계단길은 지난해 가을 떨어진 굴참나무 잎들로 뒤덮여 발목까지 푹푹 빠져든다. 따가운 봄 햇살이지만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제법 차다.

옹달샘에서 강 물줄기를 따라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이내 되돌렸다. 길이 끊어졌다. 강가 너른바위에는 언제부턴가 발견되기 시작한 공룡 발자국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한참 동안 강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시에서처럼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강 뒤로는 누군가 초록색 물감을 붓에 묻혀 뚝뚝 찍어놓은 것 같은 산이 봉우리를 이뤄 하늘을 이고 있다. 강과 산 사이로는 가르마처럼 반듯하고, 때로 구불구불한 길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퇴계는 13세 때 학문을 배우려고 집에서부터 숙부 이우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현 청량정사)까지 50리 낙동강변을 오르내렸다. 퇴계는 유난히 청량산을 아꼈는데, 산과 강 사이를 따라 난 그 길을 걸으며 '청량산가'를 비롯해 청량산의 운치를 찬탄한 여러 편의 시를 남기고,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 칭했다.

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길에는 철학자 퇴계가 자연을 벗 삼아 숱한 생각과 고민을 정리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더운 날에는 '풍혈'에서 새어 나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경암'에 앉아 시를 읊조렸다.

은빛 물결을 이루며 흐르는 낙동강 물길과 뽀얀 자갈밭, 기세등등한 청량산, 깎아지른 학소대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솔길을 걸으면 정말로 자신이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 착각하게 된다. 수직절벽 학소대는 천연기념물인 먹황새가 서식하던 곳이다. 저 멀리 청량산 선학봉과 자란봉 사이를 잇는 하늘다리도 부연 공기 사이에서 또렷이 보인다. 이내 농암종택이 나타난다. 종택에는 긍구당과 애일당(愛日堂)이라는 아름다운 별채가 있다.

기자와 함께 길을 나섰던 최성달 작가는 "철학자 칸트가 걸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인의 길'이 유명하다지만 퇴계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이 걸으며 작품을 쏟아낸 예던길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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