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선거 참여가 답이다

선거는 진화를 거듭하는데, 정치는 퇴행으로 치닫고 있다. 오죽하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인데, 국회의원은 떨어지면 인간도 아니다"고 하겠는가.

우리가 선출한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인데 국익과 사회를 위한 충심과 진심이 없겠는가. 선거 때가 되면 하나같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한 몸 기꺼이 다 바치겠다고 유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선출되기만 하면 딴판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때맞춰 법을 만들지 않아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내용이 충실하지 않은 법을 방치해 국민 권리 신장이 무시당하고 있다. 제도만 잘 정비하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데 국회에서는 남의 이야기이다. 마치 대한민국 밖의 '딴 세상' 사람인 양 행세하다가 또 선거철을 맞는다.

정(政)치란 바르게(正) 해주는 것이다(政者正也). 그런 정치는 없어 보이고, 국민의 마음에 혐오를 주는 '나쁜 퇴행'이 판을 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서 보여 준 국회의 행태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을 준수해야 국격도 높아진다. 법치국가가 전제돼야 선진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준수도 국회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현역 국회의원이 득을 본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렇게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선거구가 획정됐다. 치솟는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눈앞에 놓인 정파 간 이익이 우선이었다. 국회가 그런 '나쁜 정치'를 하면 할수록 국민은 더욱더 정치 혐오에 빠진다. 그렇게 하면 부수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유능한 젊은 엘리트의 정치 입문을 사전에 좌절시킬 수 있다. 제정신인 젊은이라면 누가 그런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겠는가. 현재 정치인들은 미래의 정치와 경쟁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정치 퇴행은 국민의 정치 혐오 확산을 넘어 국가 발전의 거대한 차단벽이 되고 있다.

물이 범람해 곡식을 쓸어가는데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범람처럼 정치 혐오가 국민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정치 혐오를 만들고 확산시킨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나쁜 행태 때문이다. 오는 13일에 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있다. 우리는 또 누군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해야 한다. 유권자가 누구를 선출하든 그것은 주권행사로서 '선택'이 된다. 정치 혐오 때문에 또는 그 여파로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핑계로 선거 참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선거 불참은 개인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고 국가적으로는 퇴행의 가속화를 방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홍수가 범람하는데 두 손 놓고 지켜보는 것과 같다.

유권자의 선거 참여만이 국민의 여망과 동떨어진 '딴 세상'인 국회를 꾸짖을 수 있고,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더는 정치적 퇴행을 하지 못하게 하는 채찍이 된다. 후보자들은 누구라도 국가와 사회 발전이란 명분의 출사표를 던진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 참여가 있다면 과연 출사표 내용에 소홀할 수 있을까. 과연 초심을 잃고서 정치적 퇴행에 동행할까. 투표에 참가한 그 많은 유권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눈 팔지 않고,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에 매진할 것이다.

선거 참여만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여러 병폐를 치료하는 답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선거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선거를 통해 스스로 미래사회를 결정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선거 참여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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