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햇볕은 음지에 필요한 것

예전에는 국군의 날을 비롯하여 금메달을 목에 건 국가대표선수들이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대규모 시가행진이 벌어지곤 하였다. 메달과 화환을 목에 건 선수들을 향해 길가에 늘어선 국민이 환호하고 꽃가루를 뿌리는 대형 환영식, 그 선두에는 언제나 번쩍이는 악기와 칼 주름으로 멋을 낸 군악대의 우렁찬 행진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해 주곤 하였다.

사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국군의 날 행사에서 시가행진하는 군악대의 멋진 모습에 반해 학교 관악부에 지원하였고 그것이 전공자의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80, 90년도에는 학교 관악부가 꽤 많이 운영되었다. 요즘 같은 대규모는 아니지만 20~30명으로 구성되어 학교 행사 위주로 운영되다가, 1년에 한두 번 대규모 행사가 있는 날이면 학교 관악부는 군악대 못지않은 칼 주름을 잡고 소리 높여 퍼레이드를 한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는 학생들에게 시간이 많았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가혹한 시대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초등학교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평생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하긴 한 것 같다. 1등을 위해 무한 경쟁하는 사람들, 열심히 노력해도 목표 달성이 어려운 현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물론 그 시절에도 1등은 있었고 꼴등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서로 돌아보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 삭막함은 없었던 것 같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고들 한다. 사실 이 말은 어려운 사람들이 큰 꿈을 품고 모진 풍파를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드는 초강력 힘의 원천인데 말이다. 결과만이 아닌 노력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가능성을 가지고 도전하는 이에게 지원의 손길이 미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을까 싶다.

문화계에도 지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많은 단체가 있다. 물론 선택과 집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또한 이 방법이 정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이들이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하여야 한다면, 그건 차별일 것이다.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은 미흡해 조금만 도와준다면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이들이 선택받지 못해 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햇볕이 잘 드는 건물에 창문을 넓히고 층을 높인다 한들 그 동네가 밝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가려진 음지만 더 늘어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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