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소·선동·포퓰리즘 공약 난무한 선거
우리가 뽑은 의원들 善意 믿을 수밖에
그들이 4년마다 읍소하는 것만큼
국민도 4년마다 희망 갖는 것 알까
총선이 드디어 끝났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를 경험한 것인가? 솔직히 읍소와 선동이 넘쳐나고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한 선거였다. 별반 색깔이 다르지도 않은 세 정당이 그저 나에게 권력을 주십사고 외친 선거였다. 무엇보다도 권력과 정치적 과두(寡頭)들의 입맛대로 공천을 했다. 3권의 하나인 입법부를 자의적(恣意的)으로 구성한 것이다. 말하자면 국회의원은 우리가 아닌 저들이 만들었다. 우리가 한 것이라곤 투표소 안에 제시된 선택지 중 하나에 기표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투표를 해야 했다. 어쨌든 선거는 우리가 주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말이다. 말이야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가 평소에 그런 권리를 행사할 길은 없다.
국회의원이 누군가?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원리에 입각한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역시 누군가로부터 통치받는 제도다. 그 누군가가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를 뿐, 누군가로부터 복종을 요구받고 또 복종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복종을 요구하는 그 누군가는 우리가 막연히 정부라고 부르는 우리의 대표들이다. 그들은 앞으로 4년 동안 '우리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설사 그들이 내리는 결정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결정은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의제(擬制)된다. 하지만 대표를 뽑는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를 다스리겠다고 나선 이들은 적어도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라야 하지 않겠는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에겐 국가적 어젠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선악을 가릴 줄 아는 곧은 정신, 일의 경중을 아는 균형감각과 결단력 같은 자질이 요구된다. 이런 것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잠시 문답을 한 다음 알아보았다는 '보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일을 벌인 장본인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움을 벌인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꿇어앉아 잘못했으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정신 차릴게요, 안 싸울게요, 일할게요'라는 학예회 아이들이 부르기 딱 좋은 후렴구를 붙인, 반성과 다짐을 의미한다는 '반다송'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친박 비박이 싸운 데 있는 게 아니다.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제대로 된 후보들을 민주적 방법으로 내놓았다면 아마 국민들은 박수를 쳤을 것이다. 굳이 반다송을 부르지 않아도 다음 4년에 대해 기대했을 것이다.
사실 대중은 공적(公的)인 어젠다에 대해 시간을 할애하며 고민하지 않는다. 설사 흥미를 느낀 어젠다라 해도 왜 아무 소득도 없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매달리겠는가? 솔직히 그런 일은 정치인이나 언론인, 평론가의 몫이다. 그런데 언론인이 객관적 입장에서 사안을 보는 건 생각처럼 많지 않다. 평론가의 말은 대부분 대중의 기호에 맞춘 아부성 발언이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현학적인 해설이다. 이들마저도 공동체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정파(政派)의 이익과 개인의 입신(立身)을 위해 태도를 정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선거를 치렀던 것이다. 투표소에서 한 단순한 기표행위로써 공동체 의사결정에 대한 모든 권리를 우리의 대표에게 위임했다. 우리는 실제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나아가서 다음 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전부 맡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숭배하는 민주주의의 실체라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이제 다음 4년간 우리는 우리가 뽑은 의원들의 선의(善意)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내리는 결정이 제발 공익에 기반한 사려 깊은 결정이길 빌 수밖에 없다. 이 처참한 기원을 4년마다 반복해 왔다. 그러면서 이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이 4년마다 우리에게 읍소하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4년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절대 모를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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