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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낙화(落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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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외마디 비명처럼…짧은 봄날은 간다

시인 육유
시인 육유

낙화(落花)

육유

산 살구, 개울 복사, 연달아 필 때

그때 마침 미친 바람 휘몰아쳤네

난간 기댄 내 흥취를 깰 순 없지만

푸른 이끼 붉은 꽃잎 피범벅 됐네

山杏溪桃次第開(산행계도차제개)

狂風正用此時來(광풍정용차시래)

未妨老子凭欄興(미방로자빙란흥)

滿地殘紅點祿苔(만지잔홍점록태)

봄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흔히들 3월부터 봄이라고 하지만, 3월은 아직도 겨울의 연장선 위에 있다. 봄은 언제쯤 끝이 나는가? 흔히들 5월까지 봄이라고 하지만, 5월에는 이미 여름이 와 있다. 그렇다면 봄은 고작 4월 한 달이 그 전부란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 4월 한 달도 모두 다 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아무리 4월이라고 해도 철이 한참 지난 꽃샘바람이 느닷없이 휘몰아치고 있는 날, 제아무리 4월이라고 해도 중국발 황사가 온 천지를 뒤덮고 있는 날, 그런 날을 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봄은 정말로 짧다.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봄은 더욱더 짧게 느껴진다. 번쩍, 일어나는 스파크 불빛보다 더 짧은 봄! "우와, 봄이 왔다" 하고 외치며 느낌표를 찍으려고 하는 찰나, 봄은 이미 뒷모습을 보이며 종종걸음으로 달아나버린다. 낙엽이 질 때부터 기다리던 봄이,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오지 않던 봄이, 이처럼 후다닥 가버리기 때문에 봄이 가는 것은 정말 아쉽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래서 그런가. 시인들의 애창가요 1위로 뽑혔다는 '봄날은 간다'를 삼절까지 죽 흥얼거리다가 보면, 창자를 돌 위에다 올려놓고 망치로 찧는 듯한 아픔이 있다. 애꿎은 창자, 마디, 마디, 툭, 툭, 다, 끊어진다. "밤 깊은 시간엔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 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 기러기 앞서가는 만리 꿈길에/ 너를 만나 기뻐 웃고/ 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가는 봄에 대한 아쉬움을 기존의 3절만으로는 도저히 달랠 수가 없었던 것일까. 문인수 시인은 3절 뒤에 이처럼 4절을 더 얹어 가는 봄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거의 1만 수에 육박하는 시를 후세에 남긴 남송(南宋)의 우국 시인 육유(陸游'1125~1210)의 시에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살구꽃, 복사꽃 드디어 차례대로 다 피어난다. 하지만 그때 마침 한바탕 미친 바람 난데없이 불어와, 피가 뚝, 뚝, 듣는 붉은 꽃잎들이 시퍼런 이끼 위에 마구 나뒹군다. 일망타진되어 참수를 당해버린 혁명군들의 그 무슨 선혈처럼, 아니면 그 외마디 비명처럼!

'그렇다고 해서 봄날의 흥취가 깨어지진 않는다'고 작품 속의 화자는 말하고 있지만, 내숭도 이런 내숭이 없다. 아아, 그리하여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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