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실 밝혀낸 오빠의 슬픈 기록…『안녕, 테레사』

안녕, 테레사/존 차 지음/문형렬 옮김/문학세계사 펴냄

1982년, 뉴욕의 한 빌딩 주차장에서 차세대 예술가로 주목받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테레사 차(한국명, 차학경)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한 것이다. 경찰은 그 빌딩의 관리원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기소했다.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의 강간과 강도 사건 전력, 그날의 행적, 테레사 차의 시신에서 발견되는 흔적 등 모든 정황들이 그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와 증인이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빌딩 관리원에게는 무죄가 선고된다. 피살자의 친오빠인 존 차는 직접 증거를 찾아 나서고, 마침내 결정적 증거를 찾아 진실을 밝혀낸다.

이 소설 '안녕, 테레사'는 누이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법정 실화소설이다. 피살된 테레사 차의 오빠인 재미작가 존 차(John Cha, 차학성)가 10년 동안 구상하고, 20년 동안 집필한 작품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끈질긴 추적과 법정 공방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전개되는 만큼 변호인들의 치밀한 두뇌 게임과, 스릴과 반전이 거듭된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 재판기록을 줄기로 하고 있지만, 느닷없이 닥쳐온 가족의 잔혹한 죽음과 남은 가족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가족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그리움과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가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32세의 나이에 요절한 테레사 차(차학경)는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녀는 1969년 버클리 대학에 입학해 미술과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특히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와 사뮤엘 베케트의 희곡을 좋아했으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앤디 워홀, 마이클 스노우의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1976년 버클리 대학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미국영화교육센터에서 영상 이론을 공부했다. 한국어와 영어, 불어에 능숙했던 그녀는 자신의 비디오 작품에서 언어를 해체해 파편적으로, 그리고 소리와 의미로 연관된 단어들을 복합적으로 변형시켰다. 그녀의 실험적인 예술 세계는 1992년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비디오와 영상전시를 통해서 비로소 뉴욕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10년 만이었다.

테레사 차가 남긴 '딕테'(Dictee)라는 책과 예술 작품 콜렉션은 미국 버클리 대학교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딕테'는 차학경의 가족사와 한국 근대사, 민족의식, 자서전적 이미지, 여성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독창적이면서도 낯설고 시적인 이미지 방식으로 구성해 디아스포라적 존재의 근원을 보여준다. 그녀가 예술가로서 활동한 8년 동안 천착했던 주제는 기억과 언어였고, 동시에 기억의 덧없음, 그리움의 덧없음이었다. '딕테'는 1997년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지은이 존 차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1961년 경기고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토목학을 전공했으며, 해양 시설 건축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문학 활동을 했다. 제37회 PEN번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버드나무 그늘 아래'', '죽느냐 사느냐, 창업가' 등이 있다. 440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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