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술 권하는 사회

술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기분 좋게 적당히 마시면 유익하지만, 도를 지나치면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이 술이다. 한마디로 '야누스의 얼굴'처럼 극단적인 양면성을 갖고 있다.

사실 술 그 자체는 그리 해로운 것이 아니다. 흡연과는 달리 적당한 양의 음주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발표도 있다. 적당한 음주는 심장병 예방 및 협심증 완화, 소화 촉진, 풍부한 영양분 섭취, 신진대사 원활 등 여러 가지 유익한 기능을 한다. 적당한 음주는 장수의 비결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은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고 한다.

최근 암 예방 수칙이 10년 만에 바뀌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가 10년 전 제정한 암 예방 수칙을 올해 '암 예방의 날'을 맞아 처음으로 일부 내용을 개정,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음주 기준이다.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만 마시라'고 소량의 음주를 허용했던 기준을 '암 예방을 위해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라'고 변경했다. 한두 잔의 반주나 퇴근 후 시원한 맥주를 별다른 위험 인식 없이 즐겼을 사람들에겐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동안 한두 잔의 술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음주를 정당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개정된 수칙은 지속적인 소량 음주가 암 발생을 높일 수 있다는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반영했다.

200여 편의 논문을 종합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한 잔의 가벼운 음주(알코올 섭취량 12g 이하)로도 발병 위험이 식도암 30%, 구강인두암 17%, 간암 8%, 대장암 7%, 유방암 5%씩 높아졌다고 한다. EU도 지난 2014년 음주 기준을 '남자 2잔, 여자 1잔 이내'에서 '암 예방을 위해서는 술을 마시지 말 것'으로 바꿨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다. 우리 사회는 술을 권하는 사회로, 술을 적당히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든 나라다.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서양인들에 비해 술이 센 사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음주량은 세계적으로도 높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3천 명 이상이 음주로 인해 암에 걸리고, 1천 명 이상이 음주로 인한 암으로 사망한다. 예의나 친목도모, 동질감 형성 등 우리 사회가 술을 권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서로 술을 권하며 소량으로 시작된 음주로 인해 결국 건강과 행복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때 예의상 담배를 권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비흡연자에게 담배를 권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소량의 음주도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술을 권하는 사회 풍습은 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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