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서 대구는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31년 만에 민주당 계열의 야당 국회의원을 배출함으로써 '꼴통 도시' 이미지를 벗었다. 공천만 하면 당선되는 줄 아는 집권당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성과도 거뒀다. 야당에게는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놓고, 진정성을 보이면 '표를 주겠다'는 사인을 보낸 것도 성과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많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평소 '코빼기도 안 비치는 후보'나 '그 진영'을 응징하고, 얼굴 잘 비치는 후보를 지지했다.
'길에서 두 번이나 만나 인사를 나눴다. 식당에서 악수하고 사진도 찍었다. 동창회, 향우회에 와서 인사하더라.' 많은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낸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향우회, 동창회 찾아와서 인사하고, 사진 찍고, 내 얼굴 알아본다고 해서 그 후보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얼굴 도장'을 진정성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의 임무는 각종 모임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법령을 제정, 비준, 개정 혹은 폐지하고, 예산안을 심의'확정하며 국정 운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뽑아준 선거구민의 의사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야 할 의무도 있다.
지역민이 선출하는 선량이 지역을 훑고 다니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얼굴 자주 비치고, 부르면 달려오고, 지역민 민원을 들어주는 일은 그야말로 구(區)의원의 일이다. '울면서 겨자를 먹는 게 인생'이라지만, 엄밀히 따지면 운동회에 와서 인사하는 일은 구의원의 일도 아니다.
유권자들이 의원들더러 운동회 와서 인사하고, 사진 찍고, 내 얼굴 알아봐 주고, 동네 민원 들어주기를 바라면, 의원들은 그렇게 행동한다. 의정 성과가 아니라 '얼굴 도장'을 기대하면 국회의원들은 '실체 있는 업적'이 아니라 '말뿐인 인사'로 대답한다. 이번 총선에서 '말뿐인 인사'에 표를 던진 것은 아닌지 우리는 자성해야 한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20대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후보를 배출한 3당 중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해 중앙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에 대한 정당의 공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정당은 없었다.
지방자치제 도입 2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무늬만 자치'일 뿐,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각 지역마다 특성에 따라 공무원 인력 수요가 다름에도 중앙정부가 정해 놓은 인력 배치는 획일적이다. 행정조직 하나 바꿀 수 없고, 국을 몇 개로 하고, 인원을 얼마나 배치해야 하는지도 모두 정해져 있다. 각 지방의 형편과 필요에 따라 인원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법과 영(令)으로 지자체의 손발을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선거 때만 되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 약속 필요 없다. 묶어 놓은 지방자치단체의 손발을 풀어주면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앙정부와 정당은 지자체의 손발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능력과 도덕성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못 미더우니 권한도 돈도 맡길 수 없고, 계속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결과는 지방의 피폐로 나타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공무원 봉급을 못 주는 지자체가 17개나 된다. 재정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 시시콜콜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지자체는 각종 축제나 행사에 열을 올린다.
이번 총선에서 정당들과 후보들은 지방을 위해 어떤 개선책도 내놓지 않았다. 여당이 몇 석을 잃고, 야당과 무소속이 몇 석을 더 얻었다지만, 그래 봐야 그들만의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선거는 정치인과 유권자가 벌이는 '협상'이다. 제20대 '총선 협상'에서 지방의 유권자들은 얻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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