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새評] 쿠오바디스 대한민국

서울대(미학과 학사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현 카이스트 겸직교수

보수정권 8년에 대한 염증 총선서 표출

野 대승 거두었다 하나 아직 승자 없어

어느 당도 시대정신 제대로 제시 못 해

물 새는 대한민국號 운명, 솔직히 암울

이번 선거는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과연 여론조사가 쓸모가 있는가?' 선거 전만 해도 모든 조사기관이 새누리당의 승리를 점치며 설사 압승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과반은 넘을 것이라 예측했다. 새누리당이 길바닥에 꿇어앉아 읍소를 하는 것을 보며, 선거 결과가 여론조사와 다소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참패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 역시 그들의 읍소를 반쯤은 엄살로 받아들였다. 

새누리당은 왜 참패했을까? 야권이 둘로 분열되어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일 때 "이제 새누리당의 압승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새누리당뿐"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다분히 자조적인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농담은 현실이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스스로 무너졌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들이 당사의 벽면에 '한 방에 훅 간다'고 써 놓은 바 있다는 것이다. 모르고 당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최대 공신(?)은 물론 대통령이다. 그가 청와대의 물리적 권력과 TK 지역의 정신적 권력을 이용해 당을 사유화하려 한 것이 '옥새 파동'이라는 웃지 못할 사태를 낳고, 그것이 수도권은 물론이고 영남의 보수층까지 등을 돌려놓은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공신들로는 대통령의 비뚤어진 욕망을 비판하고 견제하기는커녕 외려 그의 수족이 되어 당을 엉망으로 만든 최경환'이한구 의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여당의 참패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야당이라고 공천이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셀프 공천과 칸막이 공천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국민의당에서는 서슬 퍼런 도끼 퍼포먼스까지 벌어진 바 있다. 게다가 두 당은 새누리당처럼 당 안에서만 싸운 게 아니라 아예 둘로 갈라지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들의 승리를 여당의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8년 동안 지속된 보수 정권에 대한 염증이리라. 되돌아보자.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전만 해도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집권 후에 한 일이 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수행했고, 전두환 정권은 시대적 상황에 맞게 국가주도경제를 시장주도경제로 전환했으며,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반공 이데올로기를 다소나마 완화시켰다.

김영삼 정권은 하나회를 척결함으로써 민주화를 비가역적으로 만들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권은 IMF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으로 철옹성 같은 분단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대통령으로, 한국을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업그레이드시키고, 네트워크 시대에 필요한 수평적이며 탈권위적 소통의 예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정권들이다. 이 정권들에게서는 도대체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명박 정권은 삽 들고 4대강 파헤치며 이 나라를 정보화 단계에서 산업화 단계로 퇴행시켰다. 이어서 등장한 박근혜 정권은 경제적 토대를 과거로 돌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던지, 법적'정치적'문화적 상부구조마저 과거의 개발독재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그 결과 늙은 나라는 젊은이들의 '헬조선'이 되었다.

이 모든 퇴행이 '경제 성장'을 위한 희생이었단다. 그럼 돈을 4대강에 퍼붓고 재벌에 퍼주어 경제가 성장했는가? 집권 기간 평균 성장률은 김대중 정권은 5.32%, 노무현 정권은 4.48%, 이명박 정권은 3.2%, 박근혜 정권은 2.93%이다. 천문학적 액수의 재정 적자를 감수하며 거둔 성적치고는 너무나 초라하다. 이런 성적표를 들고 '옥새가 나르샤' 사극이나 찍고 있으니, 유권자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하나 이번 선거에 승자는 없다. 어느 당도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슈' 자체가 실종된 선거가 또 있었던가? 정치인들이 이렇게 '정치'에 관심 없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물이 새는 대한민국호(號)의 운명을 놓고 아직 최후의 승부가 남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전망은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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