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대구 문화 콘텐츠의 활주를 기대한다

국공립극단의 역할은 막중하다. 주제와 예술성이 뛰어난 명작과 민간극단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작을 공연하고, 지역 연극인들에게 자극과 실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연극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가 삶의 방식과 만족도에 개입하는 지금, 문화융성을 지향하는 시대에는 국공립예술단의 임무에 '지역대표 문화 콘텐츠'의 개발과 '지속가능한 공연 콘텐츠'로의 육성도 추가해야 할 듯하다. 최근 차례로 무대에 오른 연극 과 뮤지컬 은 그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2015년 취임 첫해 과 로 대중성에 방점을 찍었던 최주환 대구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준비한 올해의 무대는 '대구표(標)'라는 딱지가 선명하다. 대구의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의 부인이자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의 삶을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고, 대구 출신 작가 김원일이 한국전쟁 직후의 진골목을 배경으로 쓴 소설 을 연극으로 각색해 공연한다. 소재와 장르는 다양하지만, 모두 식민과 분단 상황에서 대구 사람의 선택과 실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구시립예술단이 표방하는 '대구 정신'이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구표 문화 콘텐츠로서의 잠재력이 있다는 말이다.

결국 과 의 가치는 공연의 예술성과 완성도가 아니라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라는 데 있다.

사실 공연 자체는 주제와 플롯이 빈약한 대본, 좁은 무대, 단조로운 동선, 허술한 앙상블 등 부족한 점이 적지 않았다. 적은 예산으로 두 개의 무대를 만드느라 여러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해하지만, 시립극단의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했다. 그러나 최주환 감독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1주일 간격으로 연극과 뮤지컬 공연을 강행했던 이유는 바로 대구표 공연문화 콘텐츠의 개발과 지속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대구시립극단 20주년을 앞두고 최주환호(號)의 행보가 바쁘다. 시립극단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제 중 하나가 시립극단의 레퍼토리를 확보하는 일. 시립극단의 공공성과 공리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공연 콘텐츠 육성을 염두에 둔 최 감독은 대구 대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여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공연물로 만드는 일에 힘을 쏟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권기옥 스토리를 신호탄으로 삼은 전략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상화에 가려져 있던 이상정 장군의 존재를 부각시켜 대구 독립운동사를 확대한 점, 권기옥을 독립적 인격체로 보고 그녀의 꿈과 애국심, 그리고 그 실천에 주목하여 주체적 여성의 모델을 제시한 점, 무엇보다 권기옥의 고귀한 정신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공연예술은 복제, 반복, 편집을 특징으로 하는 영화와는 달리, 매회의 공연이 다시없는 유일한 일회성으로 인해 그 고유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한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정서, 정신과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널리, 그리고 두고두고 전할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공연문화도시 대구에서 연극 과 뮤지컬 이 대구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전하는 대표적 공연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대구시와 관계기관의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